장거리 비행 위해 극단적인 신체변화 일어나
장거리 비행 위해 극단적인 신체변화 일어나
큰뒷부리도요 Bar-tailed Godwit (Limosa lapponica )
조그만 몸을 가진 새들이 수천km를 날아서 대륙을 건너고, 넓은 바다를 건너서 이동을 하는데, 이 철새들의 비행능력은 경탄의 대상이다.
큰뒷부리도요라는 새가 있다. 몸길이는 약 40cm정도이며 날개의 크기는 70~80㎝ 정도로 도요물떼새들 중에는 비교적 큰 편에 속하는 새다. 약 1000년 전 마오리족의 조상이 뉴질랜드를 발견하도록 만든 새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폴리네시아인들은 해마다 같은 시기에 남쪽으로 날아가는 ‘쿠아가’ 무리를 따라가면 틀림없이 육지가 나온다고 믿었다. 그들의 믿음에는 합리적 근거가 있었는데, 쿠아가는 물갈퀴도 없고 물에 빠지면 익사하는 육지 새였기 때문이다. 마오리족이 길잡이로 삼았던 쿠아가, 큰뒷부리도요는 지금 이 시각 태평양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로질러 우리나라를 거쳐 시베리아나 알래스카까지 비행을 하고 있다.
도요물떼새들의 이동을 알아내려는 시도는 많이 있었다. 큰뒷부리도요의 이동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는 아주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2007년에서야 알려졌다. 미국과 뉴질랜드 과학자들이 도요물떼새들의 이동경로를 알아보고자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뉴질랜드에 서식하던 큰뒷부리도요를 포획하여 등에 위성신호발신기를 달고 날려 보내게 되었다. 당시 포획한 큰뒷부리도요들은 모두 16마리였으며 이들 중 4마리가 쉬지 않고 태평양을 건너기 시작했다. 400~500g 정도의 몸무게를 가진 큰뒷부리도요는 3월 17일 출발하여 1주일 동안 쉬지 않고 날아 각각 우리나라의 영종도와 아산만, 북한 압록강, 중국 산둥반도에 도착하는 신호를 얻어 그동안 도요물떼새들의 베일에 감춰져 있던 이동 경로가 알려지게 되었다. 1만㎞가 넘는 이 망망대해를 일주일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잠 한숨 자지 않고, 물 한 방울 마시지 않고 쉬지 않고 힘차게 날갯짓을 하여 도착한 것이다.
대부분 우리나라 서해안의 갯벌에서 먹이를 먹고 보충하여 2주후에 다시 알래스카까지 5000km를 이동하였다. 큰뒷부리도요들은 알래스카에 도착하자마자 번식을 시작한다. 여름이 짧은 북극에서는 짧은 시간에 많은 꽃들이 피고 거기에 곤충 또한 많게 된다. 이 곤충을 새끼들에게 먹이고 키워낸 후 추워지기 전에 서둘러 이동을 준비하게 된다. 이때 세계 최장거리 비행 기록을 세워 유명해진 큰뒷부리도요는 ‘E7’이었다. 2007년 3월에 이동을 시작하여 알래스카에 도착하여 번식을 마치고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2007년 8월 30일. 드디어 큰뒷부리도요가 이동을 시작했다. 해가 지기 2시간 전 이륙한 이 큰뒷부리도요(E7)는 8일 동안 1만 2000㎞를 쉬지 않고 태평양을 횡단하게 된다. 하와이 인근 상공을 지나서 9월 7일 저녁 뉴질랜드 피아코강 어귀의 습지에 무사히 착륙했다. 평균 시속 60㎞의 속도, 고도는 약 2km를 유지한 채로 지구의 반대편으로 비행한 것이다.
새들은 고단한 여정인 여행을 떠나기 전에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알래스카 유콘강 하구에서 배를 채우고 체중을 늘려 뚱뚱해진다. 알래스카에서 출발 직전 레이더 기지와 충돌해 죽은 큰뒷부리도요 수컷을 조사한 결과 몸무게 367g 가운데 201g이 지방이었다고 한다.
장거리 이동하는 도요물떼새들은 대개 이동 직전에는 몸무게의 절반을 지방으로 채우고 이를 태워 얻은 에너지로 비행한다. 도착지에 도착하면 몸무게는 절반으로 줄어든다. 흥미롭게도 태평양을 횡단하는 점보 제트기도 무게의 절반을 연료로 채운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 결과 이들 도요새에게는 몸의 조직과 장기가 변하는 극단적 생리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긴 여행을 떠나기 전 최대한 많은 지방을 몸에 채우기 위해 비행 동안 불필요한 소화기관이나 장기는 가능한 한 축소시킨다. 앞서 출발 직전 죽은 도요새의 가슴 근육은 한쪽이 27g이나 됐지만 간은 7g, 콩팥은 한쪽이 1.5g에 지나지 않았고 위장은 텅 비어 있었다고 한다. 비행에 적합하도록 몸무게를 줄이는 것이다.
중간 기착지에 도착하면 신체는 다시 극적으로 변화시켜 심장, 다리 근육, 콩팥, 위, 간, 창자가 다시 커진다. 잠깐의 중간 기착지에서는 쉬는 시간을 빼고는 먹이를 계속 섭취한다. 다시 몸무게를 늘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 철새들이 장거리 여행을 떠나기 전 엄청난 식욕으로 배와 근육 사이에 체중의 2배까지 지방을 축적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몸속의 지방은 비행에 필요한 에너지원이다. 하지만 출발 직전엔 또다시 각 장기는 줄어들고 지방이 몸무게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이런 생리변화조차도 우리 인간은 상상을 할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호주에서 우리나라 서해안 갯벌을 거쳐 알래스카에서 번식을 마친 뒤, 중간에 쉬지 않고 곧장 1만㎞ 넘는 거리를 날아 호주 북부로 날아가는 큰뒷부리도요는 조류연구가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다. 자연의 위대함과 경이로움, 그리고 중간기착지인 우리나라 해안의 생태계가 지구의 생태환경의 중심지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