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매거진/제주의 새

먹이 부족과 방역으로 월동지에서 휴식 힘들어져

제주한라병원 2020. 2. 10. 16:05


먹이 부족과 방역으로 월동지에서 휴식 힘들어져

청둥오리 Mallard (Anas plathychos)




녹색 모자를 눌러 쓴 청둥오리. 


우리나라에 겨울에 찾아오는 철새로, 새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대표적인 새가 오리 중에 청둥오리다. 요즘은 사실상 텃새화되어 사계절 내내 볼 수 있는 새가 되어가고 있으며. 청둥오리라는 이름은 수컷의 머리가 광택이 나는 녹색으로 되어 있어서 부르게 되었다. 가금(家禽) 오리의 조상이기도 하며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번식도 알려지고 있기도 하다. 


최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일반적인 유전자(DNA) 검사로는 구별이 힘들었던 청둥오리와 흰뺨검둥오리를 구분하는 이른바 ‘유전자 신분증’이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개발되어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검출된 종을 구별할 때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라고 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진은 최근 청둥오리와 흰뺨검둥오리를 구별할 수 있는 단일 유전자 신분증(DNA 표지)을 개발했다. DNA 표지는 생물종과 원산지 등을 구별할 수 있는 유전자 단편(쪼개진 조각)이다. 그동안 종을 구분할 수 있는 일반적인 식별유전자로는 청둥오리와 흰뺨검둥오리를 구별하기 어려웠다. 기러기목 오릿과인 두 종은 지금으로부터 약 260만 년 전에 시작한 신생대 제4기 플라이스토세라는 비슷한 시기에 분화해 미토콘드리아 DNA 서열이 매우 유사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DNA 서열뿐 아니라 동물 종을 식별할 때 사용하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에도 차이가 거의 없다. 두 조류 유전체를 비교 분석해 두 종이 구별되는 유전자를 확인했다. 흰뺨검둥오리 16마리와 청둥오리 30마리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두 종을 뚜렷이 구별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한 것이다. 다름 아닌 청둥오리는 있지만 흰뺨검둥오리는 없는 49개 염기쌍으로 이뤄진 특정 서열이다.  


이번 연구는 AI 바이러스가 검출된 오리류의 종을 구별할 때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AI를 조사할 때는 조류의 분변을 채취하여 바이러스뿐 아니라 유전자를 분석해 분변이 어떤 종의 것인지 밝히는 작업도 함께 이뤄진다. 청둥오리와 흰뺨검둥오리 모두 AI가 발생할 때 주요 조사 대상에 속하는 조류다. 직접적으로 개체를 포획하기 어려워 깃털이나 분변 등 흔적 시료를 이용해 조류 생태 및 유전적 특성을 연구할 때도 이번 연구가 활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매년 겨울 제주 철새도래지에는 1000여 마리의 청둥오리가 와서 겨울을 지낸다. 그 어느 때 보다도 이번 힘든 겨울을 이들은 어떻게 지냈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번식지에서는 간혹 청둥오리와 흰뺨검둥오리의 교잡종이 생기기도 한다. 필자도 예전에 미기록종으로 착각을 하기도 했지만 오리류들을 비롯해 장수(長壽)하는 새로 알려진 두루미에서도 교잡종이 발생하기도 한다. 교잡종이든, 아니든 이번 봄에 무사히 번식지로 가서, 많은 2세들을 탄생시키고 무사히 다시 제주를 찾아오기를 기다려 본다.


찬바람이 물러가고 꽃이 피고 새싹이 돋아날 즈음이 되면 자연 생태 시계는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새들도 겨울철에는 깃이 조금은 볼품이 없어졌다가 화려한 새 옷으로 갈아입고 배우자를 만나기에 여념이 없게 된다.


  몇 해 전 겨울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AI(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하여 철새도래지마다 홍역을 치렀다. 제주에서도 예외 없이, 한경면 용수저수지와 제주 최대 철새도래지인 구좌읍 하도철새도래지에서 고병원성 바이러스가 검출되는 바람에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되고 방역을 하느라 난리법석이었다. 방역을 하느라 대형차량을 이용하여 소독을 진행하는 바람에 방역장비의 소음(?) 때문에 새들은 오히려 철새도래지에서 쉬지를 못하고 인근 해안으로 피신하여 겨울을 보냈다. 청둥오리를 비롯한 흰뺨검둥오리, 알락오리, 고방오리, 홍머리오리들이 그 어느 해 겨울보다도 힘들게 지내고 있다.


이번 겨울도 예외는 아니다. 많은 오리류들이 철새도래지에 머물기 보다는 인근 해안가로 이동해서 겨울을 나고 있다. 월동서식지의 먹이 부족과 방역으로 인한 휴식 환경의 간섭을 많이 받았는지 예전과 달리 철새도래지에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청둥오리를 비롯한 많은 겨울철새들이 제주에 머무는 동안 철새도래지에서 쉬면서 영양을 충분히 공급하여 그 에너지를 몸에 축적해야만 한다. 봄이 되어 번식지로 이동하였을 때 그해 번식 성공률은 겨울을 어떻게 지냈느냐에 따라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번식률이 떨어지면 월동지에서는 다시 볼 수 없는 새가 되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