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이웃돕기 사진의 ‘불편한’ 진실
불우이웃돕기 사진의 ‘불편한’ 진실
세상이 바뀌어서 그런지 홍보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였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불우이웃돕기 등을 하더라도 “언론에 보도는 무슨?”이라며 손사래를 쳤었다.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크고 작음을 떠나 일이 있으면 ‘보도자료’를 만들고 사진을 덧붙여 신문사로 보내 동정란(動靜欄)에 게재해 달라며 알리기에 열심이다. ‘선행(善行)’은 당연하고 체육대회 등 행사를 했더라도 보도되지 않으면 하지 않은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른 듯하다.
홍보 마인드의 변화는 인터넷을 거쳐 스마트폰으로 이어지는 정보전달 수단의 급격한 발전 덕분이다. 문서는 물론 사진까지도 첨부파일로 붙인 뒤 클릭 한번으로 보낼 수 있는 ‘신기술’인 이메일이 등장하기 이전엔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보내기가 만만치 않았다.
직접 방문해야 했다. 물론 당시도 팩스가 언론사에는 활용되고 있었지만 1년에 한두 번 행사를 하는 모임이나 단체에는 드물었다. 팩스가 있더라도 ‘보도의 가치를 키워주는’ 사진은 팩스로 불가능했다. 보도가 필요한 쪽에서 사진관에서 인화해서 ‘완제품 사진’으로 전달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보도에 대한 ‘욕구’는 있었어도 ‘실천’은 쉽지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파일을 첨부하고 클릭하기만 하면 됐다. 사진도 스캔해서 이메일에 첨부할 수 있게 됐다. 인화해야 하는 과정은 그대로였으나 직접 방문해야 하는 불편이 사라진 것이다. 그전엔 신문사도 기사 관련 사진 1장을 위해 서귀포지사에서 제주시 본사로 택시를 대절하거나, 서울지사에선 당일 항공편으로 필름이나 사진을 보내곤 했었다.
2000년대 초중반의 상황이다. 이후 2010년 들어 스마트폰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보도자료 보내기는 훨씬 간편해졌다. 스마트폰 자체에서 자료 작성이 가능하고 이메일로 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불편했던 사진 보내기는 가장 쉬운 일이 되었다. 1988 서울올림픽 당시 카메라기자도 갖지 못했던 수준의 고해상도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이메일이나 SNS로 지구촌 어디든 실시간 전송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렇게 세상이 변한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동정란 보도자료도 생산되고 보도된다. 특히 추석 등 명절을 앞두고선 ‘온정’ 나누기 관련 내용들이 많다. 사회복지시설과 독거노인 또는 한 부모 가정 등 불우이웃에 물품을 전달했다는 기사 등이다.
전달 물품의 많고 적음이나 실천 횟수의 다소(多少)를 떠나 정말 고마운 일이다. 가진 자들의 ‘갑질’, 정치인들의 ‘삽질’ 속에서도 우리 국민들이 이 땅이 살만한 곳이라는 느끼고 살아가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편집국장 재직 당시 불우이웃돕기 관련 보도자료를 접하면서 ‘게이트키퍼(gatekeeper)’로서 난감할 때가 적지 않았다. 사회에선 게이트키퍼가 ‘자살 예방을 위해 지속적인 관리·지원을 담당하는 사람’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신문에선 보도의 최종 관문을 지키는 사람, 즉 신문 게재 여부와 방식을 결정하는 편집국장을 말하는데 그 직책을 수행하기가 난감해지는 경우였다.
문제는 사진이었다. 참으로 이상했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준다고 물건을 갖고 간 사람들은 사진 속에서 웃고 있지만 정작 그를 통해 위안받아야할 주인공들의 얼굴은 밝지가 않았다. 선풍기 몇 개, 쌀 몇 포대, 몇 만원의 상품권으로 할아버지·할머니를 카메라 앞에 내세우기 때문은 아닐까하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대목이었다.
장학금 전달도 그랬다. 성적 우수는 그렇다하더라도 불우청소년 대상 장학금 수여식도 애들을 가운데 세워 놓고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기록을 남기고 싶은 마음은 이해되지만 그건 아니었다. 애들 입장에서 보면 얼굴을 내놓고 “우리 이렇게 도움 받아야할 만큼 생활이 어려워요”를 광고하고 있는 셈이다. 아이들에게 당장 아쉬운 물질로 그보다 중한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볼 일이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20여년 간 제주시에서 매년 설과 추석 두 차례에 걸쳐 10㎏짜리 쌀 200포대씩을 기증했던 ‘얼굴 없는 천사’의 스토리는 감동 그 자체였다. 그가 아름다운 것은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것보다 ‘받는 사람의 얼굴’을 드러나지 않게 배려했다는 점이었다.
누구는 20여년 선행에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반면 대다수는 어쩌다 ‘한번’의 선행도 알리기에 여념이 없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뿐만 아니라 왼발·오른발에게까지 소문내고 있는 격이다. 그렇다고 잘못됐다는 얘기가 아니다. 홍보는 필요하다. 그러한 보도가 마음은 있어도 하지 못하는 이들에겐 고마움이 되고, 언젠가는 실천으로 이어지며 이른바 ‘해피 바이러스’ 확산 등 긍정적 효과에 기여할 것이다.
그래서 편집 책임자로서 고민이었다. 모처럼 하는 ‘좋은 일’인데 사진을 실어주고는 싶지만 사진 속 모두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는 점이 주저하게 했다.
결국 배려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진은 불우이웃돕기 물품을 가져가기 전 또는 전달하기 직전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의 모습만 찍은 모습을 보내라고 했고, 그러한 사진만 보도했다. 그러한 노력 덕분인지 올 추석을 전후한 지방지 동정란 불우이웃 돕기 사진엔 도우러가는 사람들끼리 물품을 쌓아놓고 찍은 단체사진 등이 많았다. 성숙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세상만사 역지사지다. 받는 사람, 수용자, 수요자 입장에서 매사가 이뤄졌으면 한다. 선풍기 하나로 지난한 삶을 살아온 할머니·할아버지의 웃음과 맞바꾸는 것은 ‘불효’다. 또한 눈높이는 시선의 차이가 아니라 시각의 차이임을 헤아리지 못하고 물질로 아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못난’ 어른들이 돼서도 안 된다.
<김철웅 전 제주매일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