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이고 관심만큼 느낀다
아는 만큼 보이고 관심만큼 느낀다
‘무용’이라곤 이순신 장군의 무용담 밖에 …
문외한이 맡은 제주댄스빌리지추진위원장
국제자유도시 제주도에 무용 콘텐츠 더하기
지역엔 경쟁력, 도민에겐 격조 높은 문화를
관심 갖고 보다보니 재미 넘어 감동까지
몸짓의 언어 몰라도 동작 자체만 감상 가능
즐거운 인생 위해 새로운 취미 도전 바람직
“국장님은 기자 현업에 계실 때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난 5월 29일 오후 메종글래드 제주호텔에서 열린 ‘2019 제주국제댄스포럼’을 취재 왔던 도내 A신문 문화부 기자의 질문이다. 대답은 “아니”였다. “문화 쪽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하고 평기자 때는 사회부를 자주 담당해서 살인사건 현장과 부검 참관은 했어도 춤 공연은 본 적이 없었지”로 이어졌다.
제주시 B발레학원 원장인 조카(사촌 형님 딸)도 질문을 던졌다. “아빠는 무용 한다니까 내친 자식 취급하던데 어떻게 같은 김씨 집안 삼촌이 무용에 깊게 관여하세요?” 솔직하게 답해줬다. “무용이라곤 이순신 장군과 6·25 참전용사들 무용담 밖에 몰랐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구나.” 이들의 질문은 ‘제주댄스빌리지 추진위원장 김철웅’이라는 명함 때문이었다. 더욱이 이날 댄스포럼은 김철웅 위원장의 인사말로 시작됐다.
재단법인 전문무용수지원센터가 주최한 제주국제댄스포럼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였다. 올해 포럼에선 메디나 스페인 마스단자축제 예술감독 등의 발제를 통해 ‘제주댄스빌리지 조성을 통한 국제도시 제주의 이미지 고양’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해 댄스포럼은 6월1일 같은 장소에서 ‘제주의 유휴공간을 활용한 무용(춤) 마을 조성’을 목표로 의견을 모았었다. 특히 장광열 무용평론가는 ‘제주에서 세계를 춤추자’는 주제 발표에서 “제주댄스빌리지는 순수예술인 무용과 제주 자연환경, 관광을 접목한 새로운 개념의 글로벌 문화 인프라”라고 강조했다.
◇ 2018 제주국제댄스포럼
지난해는 세계적인 발레리나이자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인 강수진 씨가 지정토론자로 나와 ‘제주댄스포럼’의 공신력과 격을 입증했다. 그리고 전문무용수지원센터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지원을 받아 국내 무용예술인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는 기관이다. 이처럼 전문 무용인들이 모인 자리에, 공연보다는 사건 현장을 많이 보고 무용이 아니라 무용담이나 얘기하는 사람이 ‘위원장’을 맡았으니 후배 기자와 조카가 의아할 것은 당연했다. 지인들 역시 물음표를 던진다.
그것은 추진위원장을 맡기 전까지 얘기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15년 전 우연히 인연 맺어진 서울 후배 소개로 지난해 댄스포럼에 지정토론자로 참여하게 되는 필연을 통해 제주댄스빌리지 구상에 관여된 뒤 열심히 알아가고 있다.
제주댄스빌리지는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하는 제주도에 무용의 콘텐츠를 더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무용의 연습·제작 및 공연을 도민과 관광객들에게 보여주는 동시에 교육과 취미활동을 지원함은 물론 치매예방 등 무용을 활용한 치유까지도 목표로 하고 있다. 제주댄스빌리지는 지역엔 대외 경쟁력을, 도민들에겐 격조 높은 문화를 선사하게 될 것이다.
제주댄스빌리지 전진기지 격인 ‘상가리 문화곳간 마루’도 지난 5월28일 개관했다. 이곳에선 개관과 함께 한국 춤 명상(월)·성인발레(화)·어린이 발레(수)·K-Pop 댄스(목)·실버세대 무용(금)·흥겨운 플라멩고(토) 등 지역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이번 방학기간 초·중학생 발레학교(7월26~28일), 중학생~성인 한국무용학교(27~28일), 고교생~성인 현대무용학교(29~31일) 등 제주여름 무용학교가 운영됐다. 전국 영재수준의 교육생 유치를 통해 상가리 문화곳간이 전국적 무용 명소로 이름을 알림은 물론 교육생 가족 등의 동반 내도로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됐다고 본다.
댄스빌리지 추진위원장으로서 보람이라면 보람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즐거움이 생겼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무용이 관심만큼 느껴지며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음악 공연은 가끔 봤어도 무용은 완전히 담을 쌓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예전엔 발레 공연이 끝난 뒤 인사를 하는 모습(TV에서 우연히 보게 된 경우)도 미워보였다. 남녀 주인공이 손잡고 나와서 인사를 하고, 박수를 치면 다시 인사를 하고, 그것도 무용 동작까지 섞으면 “인사는 한번, 그것도 반듯하게 하면 되지 몸을 꼬아가면서 예쁜 척 하기는”하며 투덜댔었다. 지금은 무용 동작을 섞어 인사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인다. 그리고 관객들의 박수에 호응해서 다시 나와 인사해줄 때마다 고맙기까지 하다. 아름다운 공연의 주역들을 다시 보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무용 감상에 대한 생각도 정립되고 있다. 무용수들의 몸짓의 언어를 해석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해석이 되지 않는다고 신경을 쓰진 않는다. 그냥 보이는 대로 즐기려 한다. 외국노래 가사를 몰라도 곡이 좋으면 곡 자체만을 즐기는 것처럼, 무용이 전하는 메시지를 알지 못하면 아름다운 동작과 몸짓을 감상하고 있다. 그래서 선호도 첫째는 발레다. 몸짓의 언어가 조금씩 보이는 것 같기도 하지만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들의 아름다운 신체에서 만들어 내는 우아한 동작만으로도 ‘감동 충만’이다.
그런데 현대무용은 난해하다. 하지만 두려워하진 않는다. “관람하는 사람이 느끼는 바가 정답”이라는 전문가들의 조언 덕이다. 같은 그림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서도 사람마다 감동의 방향과 크기가 다른 것처럼 무용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래서 제안한다. 새로운 취미 개척에 적극 나설 것을. 알아가는 재미와 감동이 쏠쏠하다. 무용이 아니더라도 무엇이든 도전해 볼 필요가 있다. 퀴퀴한 냄새와 시큼한 맛 때문에 홍어를 거부하던 사람들도 누군가의 권유 또는 종용으로 ‘도전’ 한 뒤 그 퀴퀴함과 시큼함에 중독되는 것처럼 새로운 취미도 그렇게 될 수 있다. 한 번 뿐인 인생, 가능한 많이 즐기고 보람차게 살아야 한다. 그게 육체는 물론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한편 상가리 문화곳간은 마을 비료창고로 쓰이던 곳인데, 전문무용수지원센터 박인자 이사장이 지인들의 후원을 받아 개보수, 연습 공간 ‘마루’와 무용전시실로 탈바꿈시켰다. 무용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제주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제주에 좋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훌륭한 결실을 거두고 같이 향유할 수 있도록 도민들의 많은 관심을 당부 드린다.
<김철웅 전 제주매일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