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매거진/제주의이야기

제주에서 가장 오랜 450년 수령의 감나무 있어

제주한라병원 2019. 6. 28. 15:50


새로 쓰는 제주 이야기 <16> 제주시 봉개동 용강마을



제주에서 가장 오랜 450년 수령의 감나무 있어




제주시 봉개동은 넓은 마을이다. 봉개동의 중심에서 남쪽에 위치한 용강마을을 만나러 간다.


남쪽으로 가면 따뜻한 곳이려니 생각하겠지만 그렇진 않다. 제주시에서 남쪽은 한라산을 의미한다. 남쪽으로 간다는 말은 높은 고지로 올라간다는 말이 된다. 높은 고지로 올라가면 여름철에는 시원하겠지만, 반대로 겨울철은 추위와 가장 가까워진다.


용강마을은 봉개동에서도 한라산과 가장 가깝다. 때문에 눈 날씨엔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용강마을은 ‘웃무드내’라고 부른다. 이웃한 마을인 영평하동을 ‘알무드내’라고 하는 걸 보면 용강마을은 봉개동보다는 영평마을과 더 깊은 인연이 있는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무드내(무드네, 혹은 무두내라고도 함)는 뭘까. 어르신들의 말을 빌리면 “머리가 없는 내”라는 말이라고 한다.


용강노인회관에서 만난 강운철 할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전해줬다.


“용강이 뱀 형태인데, 머리가 없어서 무드내라고 했다고 하지.”


그러자 강운철 할아버지 곁에 있던 마을 할머니는 ‘뱀’이 아니라 ‘용’이라고 한다. 어쨌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용강마을은 물과 관련이 있는가 보다. 특히 용은 물과 깊은 인연을 지닌 영물이다. 지금은 무드내라는 고유 지명 대신 ‘용강’이라는 한자어를 쓴다. 용강이라는 한자어를 쓰기 시작한 건 1904년부터였다. 그나저나 용강이라고 이름을 붙일 때도 ‘용’이 들어가는 걸 보면, 무드내라는 이름을 부를 때 할아버지가 ‘뱀 형태’라고 말을 했던 것보다는 할머니가 말씀하신 ‘용 형태’가 맞지 않을까.


이 마을은 물이 귀했다. 영평동의 다락쿳물을 길어다 먹기도 했고, 명도암까지 가서 물을 길어오기도 했다. 그렇다면 물을 길어다 마시려면 대체 얼마나 시간이 걸렸을까. 할아버지는 한 두시간은 걸린다고 하자, 곁에 있던 그 할머니는 “젊을 때는 30분이면 충분했다”고 한다. 30분에 그 먼곳까지 가서 물을 길어왔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


용강마을의 시작은 권씨 할아버지였다. 권응단이라는 어르신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권견이라는 인물이 제주시 화북동에 정착을 하고, 그의 손자가 되는 권응단이 이곳 용강마을에 뿌리를 내렸다고 한다. 그때가 1637년이다. 이후 고씨도 들어오고, 부씨, 강씨 등이 이 마을에 정착했다. 어쨌거나 용강마을은 4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마을이다.


그런데 마을 어르신들마다 하는 얘기가 있다. 궤당이다. ‘궤’는 제주어로 ‘굴’이라는 뜻인데, 굴속에 신당을 짓고 살았다는 말인가. 용강노인회관에서 만난 할머니는 궤당을 설명하면서 “기가 가장 세다”고 강조했다. 할머니는 이어서 “어릴 때 거짓말을 하면 벌을 받았다”고 전했다. 사실일까. 궤당엔 500년 묵은 구실잣밤나무도 있다.



△ 용강 포제단



궤당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 곳이 있다. 포제단이다. 여기에 큰 나무가 있었는데 병에 걸려 잘려나갔다. 포제단은 유교식 제사를 치르는 곳이고, 궤당은 제주도 고유의 토속신앙을 비는 곳이다. 포제단에서 제를 올리면 그 다음날 궤당으로 향한다. 지금도 용강마을에서는 어르신 20여명이 포제단에서 마을제를 마치고 궤당으로 가서 가족들이 잘 되게 해달라고 빈다고 한다.



용강마을엔 아주 오랜 감나무가 눈길을 끈다. 궤당에 있는 구실잣밤나무보다는 수령이 어리다. 그렇다고 정말 나이가 어린 건 아니다. 감나무 나이는 어림잡아 450년이 된다고 한다. 450년이면 용강마을 역사의 시작과 엇비슷하다. 아니 용강마을보다 나이가 좀 많다고 해야겠다. 450년 감나무는 제주도에서는 용강마을의 이 나무가 유일하다. 가을엔 감이 주렁주렁 달린다고 한다. 문화재로 보호를 해도 될 것 같은데, 이 나무엔 ‘보호수’라는 이름이 붙어있지 않다. 이유를 알아봤더니 주인이 거부했다고 한다. 문화재가 될 경우 관리를 해야 하는 등의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닌지, 참 아쉽다.



450년 감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