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기는 농부의 열변에 깜짝 놀라지만…
대서기는 농부의 열변에 깜짝 놀라지만…
역사 속 세상만사- 이집트 이야기 ⅩⅩⅢ, 정의로운 판결 ② -
탐욕스러운 지방관리 넴피나크트는 어수룩해 보이는 시골 농부 쿠나누프가 당나귀에 소금과 물건들을 싣고 자신의 마을 앞을 지나가자 모략을 꾸며 그의 물건들을 빼앗았다. 우리로 치면 고부군수 조병갑과 같은 탐관오리였던 셈이다. 억울하다며 돌려달라고 사정하는 농부에겐 매질만을 돌려주었다. 아무리 사정해도 넴피나크트에게 매질만 당하고 억울하게 당나귀와 물건을 수탈당한 쿠나누프는 요즘으로 치면 재판관들의 수장(대법원장?)격인 대서기 메리텐사를 만나가 위해 헤라클레오폴리스로 갔다.
외출중인 대서기를 그는 문앞에서 끈기있게 기다렸다.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대서기가 돌아오는 것이 저 멀리 보였다. 쿠나누프가 더 기다리지 못하고 그에게 달려가자 대서기가 물었다.
“너는 누구냐?”
“오, 위대한 대서기님. 당신께서 법정에 오르시면 정의의 바람이 붑니다. 어떤 폭풍도 당신의 길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안전하게 당신의 배를 정박하게 하지요. 당신은 고아들의 아버지, 과부들의 남편, 외로운 이들의 형제이시니까요. 당신은 억압받는 자들의 소리를 들으시는 분, 나의 억울함을 들으시고 정의를 행하여 주소서.”
대서기 메리텐사는 촌스럽게 생긴 농부가 의외로 열변을 토하자 내심 깜짝 놀랐다. 그는 쿠나누프의 억울한 사연을 자세히 듣고 다음 날 이 사건을 심판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다음 날 아침 메리텐사는 정의의 홀(법정)에서 다른 재판관들을 향해 넴피나크트가 그 농부에게 한 나쁜 행동을 비난하였다. 재판관들은 그의 말을 조용히 경청한 후 이렇게 결정했다.
“법에 따라 사건의 목격자가 필요하오. 만약 농부가 당나귀와 소금을 빼앗겼다면 넴피나크트는 돌려주고 그 벌로 매질을 당해야 할 것이오. 그러나 이 농부가 부당한 일을 당한 것을 본 목격자가 있어야 하오. 저 농부의 말만 듣고 판결을 내릴 수는 없소이다.”
메리텐사는 다른 재판관들이 자신의 말을 믿으면서도 형식적인 결정에 치우치는 것을 보고 실망하였다. 쿠나누프 역시 증인이나 목격자를 구할 수가 없었으므로 실망이 컸다. 메리텐사는 파라오 누부카우레에게 달려가 이렇게 고했다.
“나의 주인이시여. 저는 읽지도 쓰지도 못하지만 놀랄 정도로 말을 잘하는 농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가난한 농부는 폐하의 관리 가운데 한 사람에게 자신의 당나귀와 소금을 빼앗기고 저에게 정의를 구하려고 왔습니다.”
파라오는 메리텐사의 말에 농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그자가 그렇게 말을 잘한단 말이오?”
“네, 그렇습니다. 또 제가 보기에 농부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그 농부를 위해 재판을 열고 열흘 동안 진술을 하라고 하시오. 집사들에게는 그가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를 전부 기록하라고 하겠소. 시간이 좀 걸리는 만큼 그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충분히 주고 그의 가족들에게도 충분한 식량을 갖다 주도록 하시오.”
모든 것은 파라오의 지시대로 잘 이루어졌다. 쿠나누프가 법정에 나왔다. 재판장으로 나온 메리텐사는 일부러 냉랭한 표정을 지으며 쿠나누프에게 진술하라고 명했다. 대법정의 엄숙한 분위기에도 그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위대한 주인이시여. 정의는 천국으로 가는 방향타요, 당신은 이집트의 방향타이십니다. 당신은 정의의 추를 지키고 가장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토트 신과 같은 존재, 당신이 도둑을 옹호하신다면 누가 범죄를 벌하겠습니까?”
쿠나누프의 진술은 물 흐르듯 유창하게 진행되었다. 메리텐사는 내심 흐뭇했지만 파라오의 지시로 한 마디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법정 뒤에서는 서기가 쿠나누프의 진술을 전부 기록하고 있었다. 진술이 다 끝난 후 메리텐사는 아무런 말도 없이 퇴정할 수 밖에 없었다. 쿠나누프는 메리텐사의 반응에 매우 실망했다.
실망한 쿠나누프는 다음 날 아침 법정에 나와 무능하고 형식적인 재판관들을 격렬히 비난했다. 메리텐사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경비들은 법정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채찍을 휘둘렀다. 욕심 많은 지방관리 넴피나크트는 이 광경을 보고 속으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한국장학재단 부산센터장 안대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