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종료코너/숲이야기

신선이 사는 영산도 울긋불긋한 가을로 물들어

제주한라병원 2018. 10. 29. 09:51

신선이 사는 영산도 울긋불긋한 가을로 물들어



한라산 영실등산로

덥다는 말이 옛말이 된 듯 아침저녁으로 옷깃을 여미게 한다.

봄, 가을이 짧아졌다고 하지만 이젠 피부로 느낄 사이도 없이 지나가버리는 듯하다. 이렇게 바쁜 계절의 흐름에 마음도 바빠지게 된다. 제주도에서 가을 단풍을 그나마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라면 한라산 자락의 숲과 계곡일 것이다. 아기자기한 숲의 단풍도 아름답지만 탁 트인 전망에 기이한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골짜기를 이루며 이름처럼 신령이 나타날 듯 한 영실 등산로의 가을은 감동을 준다.

이른 시간이라 한산한 등산로에는 벌써 단풍이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봄꽃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지만 가을 단풍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온다. 올해는 여름에 가뭄이 심해서 나무들이 색동옷을 갈아입기도 전에 누렇게 말라 떨어지거나 잎 끝이 누렇게 말려서 색이 예년보다 곱지는 않다. 그래도 졸졸 흐르는 계곡 물소리 따라 붉은 단풍나무가 곱게 물들어가고 있다. 탐방로 옆으로 아름다운 단풍그림에 안내 푯말이 있다. ‘늦가을 날씨가 추워지면서 엽록소가 파괴되고 눈에 띄지 않던 카로티노이드와 안토시안이 모습을 드러낸다.’라고 나뭇잎이 물드는 이유를 전문적으로 적어 놓았다. 이게 도대체 뭘까? 좀 더 쉽게 말하면 단풍은 나무가 겨울나기를 위해 ‘낙엽 만들기’를 준비하면서 만들어진다. 가을이 되면 나무는 나뭇잎으로 가는 물과 영양분을 차단하게 된다. 이 때문에 나뭇잎에 들어 있던 엽록소는 햇빛에 파괴되면서 양이 줄게 되고, 결국 나뭇잎의 녹색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대신 종전에는 녹색의 엽록소 때문에 보이지 않던 다른 색의 색소가 더 두드러져 나뭇잎이 다양한 색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단풍은 색을 입는 것이 아니라 녹색의 옷을 벗는 것이 맞는 말이겠지만 이거든 저거든 신비함을 보여주는 자연에 감사할 뿐이다. “산딸나무”가 잎사귀 하나 없이 동글동글 붉은 구슬을 꿰어 놓은 듯 앙상한 가지에 달려있다. 지난 태풍에 열매가 익어 떨어 지기전도에 잎사귀를 다 떨어뜨렸나보다.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가면 설문대 할망의 아들들이 지키고 있는 ‘오백장군’의 병풍바위가 당당하고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펼쳐져있다. ‘영실기암’이다. 절벽 사이사이 노란 원추리가 피었던 때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양지바른 곳에 쑥부쟁이와 가시엉겅퀴만 살짝 보여줄 뿐 꽃은 흔적을 감추었다. 일찍 저버린 가을 야생화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도 잠시 앙상한 나뭇가지에 꽃처럼 달려있는 주홍빛 열매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화살나무’다. 화살나무는 나뭇가지에 화살 깃털을 닮은 회갈색의 코르크 날개를 달고 있어 특이한 화살나무는 가을이 되면 붉게 물드는 잎이 너무 예쁜데 태풍의 영향일까? 앙증맞은 열매만 대롱대롱 달려있다. 잎이 없어서 그런지 껍질을 벗은 열매가 너무 곱다.

넘치고 많을 때는 느끼지 못했을 것을 ‘참빗살나무’ 열매를 보고 알았다. 연분홍색의 복주머니 같은 열매가 네 개로 갈라지면서 주홍색 껍질에 쌓인 씨가 나온다. 그 씨가 다 떨어지면 남아있던 열매껍질이 다시 꽃을 피우고 있는 뜻 한 착각을 하게 한다. 예년처럼 주위가 화려했으면 보거나 느끼지 못 했을 것이다. ‘참빗살나무’가 두 번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나만 알게 된 듯 피식 웃어진다.

구름이 올라와 영실기암의 병풍을 가리니 바라보던 사람이 말한다. 신령이 나타날 것 같다고...

 

‘그래요... 여긴 영산(靈山)으로 신선이 살고 있는 영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