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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개발 ‘자원’ 아니라 ‘상상력’의 부재가 문제”

제주한라병원 2018. 10. 29. 09:47

“제주개발 ‘자원’ 아니라 ‘상상력’의 부재가 문제”

 

 

생각 따라 “98%가 부족해”도 칭찬

‘역발상이 가능성’ 성공사례도 많아

거꾸로 간 유후인 관광개발 대표적

영화관 없어도 영화제 치르는 마을

기발한 관광상품 발길 끊이지 않아

제주 개발에도 발상의 전환 필요해

 

    

△유후인의 관광지 모습

 

“2%가 부족하다” 어느 음료수 광고 카피에서 시작됐는데 참 좋은 말이다. 실수를, 실패를 아프지 않게 지적한다. 그 대상이 자신이어도, “너는 2%가 부족해”처럼 상대방이어도 괜찮다. 비난이 아니라 격려다.

정말로 완벽에 아주 조금 모자라다는 것처럼 들린다. 너무 완벽하지 않아 ‘사람의 냄새’가 난다는 뜻으로도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실수에 대한 ‘2% 부족’이라는 찬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시각의 ‘2%이론’도 있다. ‘모자란 게 2%’가 아니라 ‘들어있는 게 2%’라는 말이다. 달리 표현하면 98%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속된 말로 “골빈 놈으로 보는 것 아니냐”며 열이면 열 모두 발끈한다.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거꾸로 보면 그것만도 아니다. 2%만 차있다는 것은 앞으로 채울 수 있는 공간이 98%나 된다는 얘기도 된다. 지금이 2%이니 2%만 더해도 역량이 2배로 늘어난다. 무한한 가능성이다.

컴퓨터 USB메모리가 좋은 예다. 컴퓨터에 꽂았는데 메모리가 98%가 차있고 여유 공간이 2%에 불과하다면 그저 갑갑할 뿐이다. 제대로 저장할 수가 없다. 설령 한 두개의 파일을 우겨넣더라도 그것으로 끝이다.

반대로 메모리에 2%만 저장돼 있고 비어있는, 즉 사용가능한 용량이 98%나 된다면 얘기는 100% 달라진다. 필요에 따라 폴더를 만들고 노래·동영상·사진 파일 등을 맘껏 담을 수 있다.

생각을 바꾸니 칭찬 같던 ‘2% 부족’보다 비난 같은 ‘98% 부족’이 많은 잠재력을 가진 것처럼 들린다. 이처럼 세상만사 생각하기 나름이다.

역발상은 가능성이기도 하다. 성공 사례가 적지 않다. 그 가운데서도 일본의 유명한 온천 관광지 유후인(由布院)이다. 2008년 현장 취재 당시 “거꾸로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한적한 산촌의 관광혁명’을 일궈냈던 유후인은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포클레인과 콘크리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제주관광 개발의 현실 속에서 유후인에 대한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유후인은 규슈(九州) 오이타현(大分縣) 중앙에 위치한 전형적 농촌 마을로 해발 1584m의 유후다케(由布岳) 등 1000m급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벳부(別府)에서 서쪽으로 13㎞, 규슈의 관문인 후쿠오카 공항에서 동남동쪽으로 90여㎞ 떨어져 있다. 128㎢에 면적에 주민은 고작 1만1000명이었다. 그리고 온천을 갖춘 료칸(旅館)과 소박한 농촌 풍경, 조용한 거리가 관광자원의 전부였다.

그런데 유후인은 이렇게 ‘빈약한’ 관광상품으로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바람직한 관광지 만들기의 성공 사례로 손꼽히며 명성을 구가하고 있었다. 제주의 구좌읍(면적 186㎢·당시 인구 1만5000명)보다 작은 마을이 제주도와 맞먹는 수준(2007년 543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던 셈이다.

유후인의 성공은 온도(45~98℃)가 높고 용출량이 풍부한 온천이 밑바탕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장 큰 성공의 원동력은 ‘거꾸로 갈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일본에서 관광개발이 본격화된 1960년대는 직장 등의 단체 여행이 주였고, 관광지는 뛰어난 대자연이나 명소, 그리고 온천지에선 유흥가가 필수 조건이었다. 관광지 만들기에 나선 유후인은, 그러나 ‘국제관광 온천도시’ 벳부의 위치를 목표로 하면서도 결코 따라하진 않았다.

외지자본이 아니라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관광과 연회 패턴의 환락형 관광지를 거부하고 ‘살기 좋은 마을이 뛰어난 관광지’라는 콘셉트로 고유성을 지닌 관광지로 개발했다.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 자체가 관광매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농촌 경관·지역 관습 등 일상적인 전원생활로 비일상적인 매력을 제공했다. ‘어디나 있을 것 같지만 찾기 힘들어진 것’들로 도시인의 향수·정서를 자극했다.

역발상에 뿌리를 둔 거침없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계속한 진화도 성공 요인이다. 대표적인 것이 ‘유후인영화제’다. 유후인에는 영화관이 하나도 없음에도 매년 영화제를 개최했다. “영화관 하나 없는 마을, 그러나 그곳에는 영화가 있다”는 ‘이상한’ 슬로건으로 관광객들을 이끌었다. 결국 거꾸로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임을 증명하며 지구상에 하나뿐인 온천관광지 유후인을 만들어 낸 것이다.

열린 사고이자 발상의 전환이다. 책상 위(Desktop)에, 그리고 무릎 위(laptop)에 있던 컴퓨터를 핸드폰 속에 집어넣을 생각을 하고 실현해낸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Steve Jobs)도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를 외치고 실천하며 지구촌에 ‘스마트폰’을 선물하고 떠났다.

그러고 보면 우리도 가끔 거꾸로 간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덮어씌웠던 산지천과 청계천을 걷어내고 옛 물길을 다시 이은 작업은 확실히 거꾸로 가는 길이었다. 느림의 미학으로 예찬되는 올레 등 걷기도 통상적인 관광과 개발의 관점에서 보면 엄연한 뒷걸음질이다.

그런데 제주도는 지금도 앞으로만 달려가려는 것 같다. 해안가는 물론 오름과 중산간 등 제주의 환경이 각종 개발로 파괴되고 있다. 산지천을 걷어내야 했던 전철을 다시 밟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크다.

제주 개발에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제주에 부족한 것은 콘크리트가 아니다. 영화관이 없는데도 영화제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실천한 유후인과 달리, ‘자원의 부재’가 아니라 ‘상상력의 부재’가 미래로 가는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