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종료코너/숲이야기

하얀 구름 배경으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산정호수

제주한라병원 2018. 10. 8. 11:38

하얀 구름 배경으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산정호수

 

여름 내내 가뭄에 더위에 지친 산야에 단비가 내려 촉촉이 적셔주니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말랐던 내창에 물이 찰랑거리면 궁금증에 배낭을 챙겨 한라산으로 향한다.

제주도에는 산 정상 분화구에 물을 품고 있는 곳이 몇 군데가 있다. 물영아리오름, 물장오리오름, 물찻오름, 금오름, 등 물찻오름을 빼고는 모두 습지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습원’이지만 백두산 천지와 같은 호수의 느낌을 맛 볼 수 있는 곳은 한라산 1330고지에 있는 ‘사라오름’이다. 단 예전에는 늘 물이 고여 있었지만 점점 강수량이 줄어들고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바닥을 들어낼 때가 많아졌다. 산 아래 말라있던 내창에 물이 찰랑찰랑 차오를 정도의 비가 내리면 사라오름의 산정호수는 정점에 달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성판악 입구에 들어서니 일반 숲에서의 느낌과는 또 다른 한라산만의 기운을 느끼게 된다. 큰 산이 주는 힘인 듯 다리에 힘을 주고 걸어본다. 성판악 등산로는 단조롭다. 한라산의 숲은 극상림(기후 조건에 적응하여 오랜 기간 안정적인 상태)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서어나무, 졸참나무, 산딸나무, 마가목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오랜 기간 우거진 숲으로 빛이 잘 들지 않지만 사이사이로 내리는 빛이 숲의 작은 생명들을 건강하게 키우고 있다. 제주도의 상징 새인 ‘큰오색딱따구리’의 나무 찧는 소리에 발길을 멈춰 주위를 둘러봐도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세월의 무게로 쌓인 부엽토를 비집고 올라온 ‘달걀 버섯’의 강열한 붉은색은 하얀 알을 깨고 나와서 인지 더욱더 매혹적이다. 하지만 산에서 나는 버섯은 전문가가 아니면 채취도 하지 말고 만지지도 말고 그냥 눈으로 바라봐 주면 된다. 한 시간 반 정도 걷다보면 쉼터가 나온다. 이 곳 속밭 쉼터에는 이곳을 지키는 지킴이가 있는데 사람들이 무심이 지나기도 하고 생각지도 않게 만나면 기겁을 하는 사람도 있다. 쉼터 건물 계단아래 푯말 ‘뱀 조심’의 주인공 ‘쇠살모사’다. 사람들이 지나가든 말든 쳐다보든 말든 햇볕을 쬐러 나왔다가 어느새 자기 집으로 사라지는데 아직은 어려서 몇 년은 더 이곳 지킴이 노릇을 할 듯하다. 다시 1.7km를 오르면 사라오름 입구 계단을 만나게 된다. 천천히 계단을 오르며 어느새 익어가는 산딸나무의 붉은 열매가 하나 둘 떨어져 가을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린다. 계단이 힘겨워 질쯤 길 끝에는 기대이상의 산정호수가 멋진 구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백두산 천지를 가보지 않았다면 천지가 이곳보다 아름다울까? 할 정도로 멋진 풍광은 넋을 잃게 한다. 사라오름은 제주도의 6대 명당자리 중 제1로 꼽는 곳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무속인들이 사람의 눈을 피해 찾아와 기(氣)를 받기위한 흔적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만큼 영험하고 신성시되었던 곳이라 그런지 이렇게 분화구에 물이 가득 차는 날을 만나면 산신이 주는 좋은 기운을 받은 듯 내려가는 길에 에너지가 넘친다. 이틀이 멀다하고 내린 비는 가장자리 전망대로 가는 나무데크 위까지 차올랐다. 전망대를 가기위해 양손에 신발을 벗어 들고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 올려 물속으로 발을 담그니 시원함도 잠시 발이 시릴 만큼 물은 차가웠지만 가슴은 따뜻한 기운이 흐른다. 어린 시절 외가댁에 가면 그곳 동무들과 산과 들로 뛰어 놀다가 개울물을 만나면 양손에 신발 벗어 들고 첨벙첨벙 건넜던 추억이 떠올라 시려오는 발도 잊고 물속에서 한참을 서있는데 늦둥이 올챙이들이 발 옆으로 지나간다. 늦게 태어나 개구리가 되기도 전에 매서운 추위가 닥쳐올지도 모르는데 마냥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는 올챙이들이 안쓰러우면서도 귀엽고 반갑다.

한라산 동쪽 정상이 시원하게 보이는 전망대 아래 서귀포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또 비가 온다. 호수에 헤엄치던 올챙이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