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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견고했던 성채는 하룻밤 사이에 허망하게 함락

제주한라병원 2018. 10. 8. 11:37

높고 견고했던 성채는 하룻밤 사이에 허망하게 함락

 

‘이집트 판 트로이 목마’라는 부제대로 이 이야기의 모티브는 그리스 신화의 트로이 전쟁사에 비견된다. 잠시 트로이 이야기를 돌아보자.

 

트로이 전쟁은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부인 헬레네를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납치(?)한 뒤 이에 대한 복수에서 출발했다. 파리스와 헬레네의 사랑 장난으로 전쟁의 소용돌이가 시작된 것이다. 파리스의 형인 헥토르와 ‘아킬레스건’ 외에는 아무런 약점이 없던 무적 아킬레우스의 결투. 결투에서 진 헥로트의 시신을 전차에 매달아 12일간 친구의 무덤 주위를 돌게 했단 아킬레우스.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되찾기 위해 적장 아킬레우스의 막사에 몰래 들어가 무릎 꿇고 눈물로 사정하며, 원수인 아킬레우스의 손등에 키스할 수밖에 없었던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 왕. 파리스의 화살에 발목을 맞아 죽음을 맞이하는 아킬레우스.

 

이처럼 수많은 우여곡절 속에도 전쟁은 9년이 지나도록 결말을 맺지 못한다. 그러던 와중에 오디세우스가 세운 결정적인 전략이 바로 ‘트로이의 목마’. 오디세우스는 건축가 에페이오스를 시켜 속이 빈 거대한 목마를 만들게 한 다음 그리스군 정예 요원들과 함께 목마 안에 매복한다. 그리고 목마에 ‘그리스 군이 철수하면서 아테네 여신에게 바치는 선물’이라는 문구를 새겨 트로이 해안에 세워놓고 그리스군이 철수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이것이 그리스군의 속임수라고 주장했던 제사장 라오콘의 주장은 묵살되고, 트로이 사람들은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놓고, 전쟁이 끝난 것을 자축하며 밤새워 먹고 마신다. 그날 밤 오디세우스와 그리스 정예군사들이 목마에서 빠져나와 공격하자 트로이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만다. 지난했던 10년간의 트로이 전쟁은 이렇게 ‘작은 방심’으로 그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다시 이집트 판 트로이 목마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투티 장군의 가짜 항복에 속아 넘어간 좁파의 총독이 파라오의 황금 홀에 맞아 최후를 맞이한 후 투티 장군은 다시 천막 앞으로 나와 차양 아래에 섰다. 멀리 바구니를 짊어진 이집트의 병사들이 좁파 성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그는 병사들이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느긋하게 갑옷을 고쳐 입었다.

 

좁파 총독의 마차를 몰며 이집트 병사들을 안내하던 좁파의 병사가 성문 앞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성문을 열어라! 이집트 투티 장군과 그 부하들이 우리에게 투항했다. 이 바구니들은 투티 장군이 우리에게 주는 공물이다.”

 

높고 견고한 성채로 에워싸여 이집트군이 아무리 두드려도 열릴 것 같지 않던 좁파의 성문은 총독의 마차를 본 좁파 병사들 스스로의 손으로 너무나도 허망하게 열렸다. 성문이 열리고 바구니가 성 안으로 옮겨지자, 바구니 속에 숨어있던 이집트 병사들은 사나운 맹수처럼 밖으로 튀어 나왔다. 바구니를 나르던 이집트 병사들 역시 바구니 안에 숨겨두었던 무기를 꺼내들고 성문을 지키던 좁파의 병사들을 기습했다.

 

당황한 좁파의 병사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우왕좌왕하면서 달아나기 급급했다. 2백 개의 바구니 속에 숨어있던 2백 명과 그 바구니를 들어 나르던 4백 명의 병사, 총 6백 명의 용맹한 이집트 병사들은 순식간에 좁파 성을 함락시키고 성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투티 장군과 그의 군대는 열린 성문을 통해 위풍당당하게 행진하여 좁파로 입성했다.

 

하룻밤 사이에 성을 함락시킨 투티 장군은 파라오에게 편지를 썼다. “기뻐하십시오. 당신의 아버지 아몬 라가 좁파 성과 그 주민 모두를 당신의 손 안에 보냈습니다. 사람들을 보내시어 이곳에 있는 수많은 남자와 여자 포로들과 노획물들을 가져가시고, 아몬 라의 전당을 채우십시오. 좁파는 이제 영원히 폐하의 것이 되었습니다.”

 

투티 장군은 좁파를 점령하고 나서도 다시 진군을 계속하여 주변의 모든 땅을 점령했다. 그리고 원정대를 무사히 이끌고 이집트로 귀환했다. 파라오는 그에게 큰 명예와 재산을 주고 특별히 황금 활도 하사했다. 이 활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투티, 파라오의 신하. 파라오의 신임을 받는 자. 수비대의 사령관. 북방의 감시자. 모든 외국 땅에서 파라오의 통치를 위임받은 자. 그는 창고를 청금석과 은과 금으로 채웠노라. 상하 이집트의 주인 파라오 투트모세 라멘케페르의 총애를 받은 군대의 사령관. 파라오의 친구, 투티”

 

그리스의 오디세우스에 비견되는 이집트의 투티 장군 이야기는 이렇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