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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종교적 관점이 아니라 문화적 자원 인식해야

제주한라병원 2018. 10. 8. 11:36

당, 종교적 관점이 아니라 문화적 자원 인식해야

 

고유가치 외면하는 제주관광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관광패턴은 주로 쇼핑 관광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국내의 많은 관광지들이 한국적 개성을 드러내는 조건인 역사. 문화적 특색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주 역시 오래전부터 국제적 관광지를 꿈꾸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정작 지역 정체성의 본질인 문화. 역사적 요소를 관광과 접목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환경에 대해서는 많이 강조되고 있으나 지역의 인문적 정체성에 대해서는 관심이 덜하다. 전문가들에게 의뢰하는 용역에서도 지역의 인문적 특성을 강조하는 내용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재탕, 삼탕으로 인용되는 지리적, 환경적 배경과 문화적 현황만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을 뿐이다. 외형적 개발에 치중하는 하드웨어적 관광으로는 이제 더 이상 관광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제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중국인이 아니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인들이 주를 이룬다.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은 미주나 유럽관광객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제주는 상상력으로 빛나는 신화와 수많은 토속문화가 살아 숨 쉬는 인문학의 보고다. 인문적 요소는 지구촌을 풍요롭게 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을 뿐 아니라 지역이 세계로 뜨는 동력으로 활용되고 있다. 청정 환경과 함께 제주의 속살을 신비롭게 할 인문학이 깨어나야 제주가치가 살아나고 관광의 품격이 달라진다.

 

제주문화의 고향, 당

제주에는 수많은 당이 있다. 제주의 당은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치병과 생활의 무사안녕을 갈구했던 장소이다. 제주의 당은 마을을 이루고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들어서 있다. 마을 주변의 산, 숲, 냇가, 연못, 언덕, 그리고 나무나 돌 등 다양한 곳에 둥지를 틀었다. 제주의 당에는 인간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을 담은 갖가지 흥미진진한 사연이 담겨있다. 마을의 내력과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궤적이 녹아 있는 현장이다. 당은 마을의 협동과 결속을 위한 회합의 장소이기도 했다. 그러니 당을 떠나서 제주의 정체성과 제주인의 정서를 논할 수 없다. 제주의 당은 이방인들이 제주의 속살을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이다. 당을 불편한 토속신앙의 관점에서만 치부할 것은 아니다. 거칠고 험난한 초자연 속에서 살려고 버둥댔던 선인들의 절박한 우주관이 낳은 문화적 산물일 뿐이다. 이러한 당을 제주인들에게는 고난과 시련의 교훈적 공간으로, 또 이방인들에게는 제주의 삶의 속살을 가장 가까이에서 이해할 수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 제주도 전역에 걸쳐 산재해 있는 당을 모두 활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사안별로 특색 있는 당을 골라 일정한 공간에 연출할 수도 있겠다. 자손을 점지해 주십사하고 빌었던 당, 병 치유를 기원했던 당, 자녀들의 성공을 기원했던 당 등, 인간의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비념의 목적에 맞게 조성해 놓는다면 제주의 원초적 향취가 풍겨나는 명소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럴 경우 비념문화가 성행하는 일본 등 동남아 지역 관광객은 물론 세계 각국의 사람들에게 진한 호기심을 끌 수 있을 것이다. 일부에서 미신적 요소를 조장하다는 부정적 반응을 보일 수 있겠다. 그러나 제주의 당은 제주인들의 삶의 궤적을 관찰해볼 수 있는 문화적 자원으로 인식해야 하지 종교적 관점에서 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또 하나의 원시 스토리

찬란한 문화를 형성했던 잉카나 그리스 등에는 하나같이 인간세계와 교감을 나눴던 신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들 신화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거인들의 이야기다. 제주의 신화에도 거인들이 등장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설문대와 오백장군이다. 설문대가 한 발자국 움직일 때마다 호수가 생겨났고 봉우리가 만들어졌다. 설문대의 아들들인 오백장군들 역시 거인들이고 엄청난 식성을 자랑했다. 제주는 작은 섬이지만 동화에나 나올법한 신비로운 거인국인 셈이다. 설문대와 오백장군을 단순히 전설로만 남겨두기엔 너무 아쉽다. 과감하게 제주의 가치로 끌어올리고 관광에도 접목시켜야 한다. 오래전 전국소년체전에서 설문대할망을 대형성화대에 접목시켜서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이후 설문대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말았다. 설문대할망을 제주의 중심으로 끌어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테마파크로도 만들고, 축제로도 만들어서 세계인이 좋아하는 보편적 대상으로 승화해 내야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축제로 연출하는 일이다. 축제가 추구하는 본질적 핵심 가운데 하나는 가장행렬을 중심으로 한 거리축제다. 거대한 설문대와 오백장군이 화려하게 치장하고 거리를 행진한다고 상상해보자. 얼마나 거대하고 매력적인 축제가 될 것인가. 축제가 성공적으로 개최되고 커지면 자연스럽게 테마파크로도 조성하고 뮤지컬로 만들고 반지의 제왕처럼 영화로도 제작해야 한다. 지역적 개성과 상상력이 세계로 뜨는 지금, 원시 공동체가 만들어낸 토속문화야 말로 제주가 세계로 갈 수 있는 동력이다.

 

 

<전 JIBS 송정일 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