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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위기…종이돈과 종이신문 어느 게 먼저 사라질까

제주한라병원 2018. 5. 2. 09:37

신문의 위기…종이돈과 종이신문 어느 게 먼저 사라질까

 

 

 4월7일은 ‘신문의 날’이다. 1957년 한국신문편집인협회가 독립신문(獨立新聞) 창간 61주년(1896년 4월7일 창간)을 맞아 제정했다. 한말(韓末) 기울어가는 국운을 바로잡고 민족을 개화, 자주·독립·민권의 기틀을 확립하고자 순한글판 민간중립지로 출발한 독립신문의 창간정신을 기리고 신문의 사명과 책임을 다하자는 취지다.

 이후 신문인들은 매년 ‘신문의 날’에 표어를 제정하고 실천을 다짐한다. 제1회 표어는 ‘신문은 약자의 반려’였고, 올해 62주년의 표어는 ‘가장 좋은 적금, 신문 읽는 지금’이다.

 그간 세월을 달리하며 제정했던 신문의 날 표어에는 시대상이 담겨 있다. 국력 신장이 국가적 지상최대의 과제였던 시절인 1970년 신문의 날 표어는 ‘나라와 겨레와 함께 뻗는 신문’이었다. 서울올림픽과 함께 자유의 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인 1988년엔 ‘자유경쟁 시대의 신문’이 선정됐다. ‘정보의 바다, 중심에 신문이 함께 합니다’가 선정된 2000년은 ‘컴퓨터가 2000년을 1900년으로 인식,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이른바 밀레니엄(Y2K) 버그를 극복하고 대한민국 사회에 컴퓨터 보급과 사용이 본격화된 시점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신문의 날 표어는 반성과 희망에 이어 다짐으로 흐르는 경향을 보였다. 2003년 표어 ‘독자에게 떳떳한 신문, 역사 앞에 당당한 언론’은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반성, 2007년 ‘신문 읽는 습관이 가장 큰 투자입니다’는 독자가 줄어드는 상황에 대한 탄식, 2013년 ‘내 손 안에 신문 나의 경쟁력’은 독자들이 그래줬으면 하는 희망사항, 2016년 ‘시대보다 한 발 먼저, 독자에게 한 걸음 더’는 다짐으로 읽힌다.

 그리고 신문의 날에는 전국 모든 신문이 휴간한다. 연중 설과 추석연휴를 제외하곤 국경일 등 ‘빨간날’에도 쉬지 못하고 신문을 만드는 신문인들에게 휴식을 주기 위함이다. 그런데 올해는 재미가 없다. 신문의 날은 정기휴간일인 토요일이었다.

 생일과도 같은 신문의 날을 보내며 ‘신문쟁이’로서 안타까움이 크다. 휴일이 토요일과 겹쳐서가 아니다. 신문의 위기 때문이다.

 그리 오래지 않았던 과거까지 신문은 공신력의 대명사였다. 서로 한참을 우기다가도 “신문에 났더라”고 하면 상황종료였다. 신문에 실린 뉴스는 독자를 포함한 모두에게 ‘사실’로 인식됐다.

방송 초창기에도 신문은 이러한 ‘지위’를 유지했다. 방송은 보도시각이 정해져 있고 보도시간도 드라마와 오락 등에 밀려 한정돼 있었다. 따라서 방송시각을 놓치면 뉴스를 들을 수 없었고, 듣더라도 시간의 한계로 다양하지도 심층적이지도 못했다.

 반면 신문은 소비자인 뉴스 수용자에게 선택권이 있었다. 일단 보고 싶은 시간에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정치·경제·사회·문화·스포츠·연예·칼럼 등 다양한 분야의 정보가 여러 면에 걸쳐 담겨 있어 독자들은 원하는 장소에서 신문을 들고 원하는 정보가 담긴 면을 펴기만 하면 됐었다.

하지만 방송매체가 늘어나고 24시간 뉴스채널들이 생겨나면서 신문의 위상은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했다. 최근엔 인터넷의 발달과 모든 언론사의 뉴스를 종합 정리해서 보여주는 포털 등의 영향으로 신문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었다. 이제는 종이돈이 먼저 없어질지, 종이신문이 먼저 사라질지 ‘경쟁’하고 있다는 자조(自嘲)마저 나온다.

 매체의 증가는 뉴스 수용자만 빼앗아가지 않았다. 신문사의 주 수입원인 광고시장까지 잠식당하면서 경영까지 위협받고 있다. 각종 산업의 발달과 마케팅 필요성에 대한 인식 확산 등으로 광고시장도 커지고 있다곤 하지만 급격히 늘어난 매체들이 한정된 파이를 나누다보니 힘들 수밖에 없다.

 특히 독자가 줄어들면서 빈익빈(貧益貧)이 가중되고 있다. 신문을 보는 사람이 적으니 광고효과도 작을 것은 당연해 광고주들이 신문보다 방송을 선호하고 있다. 그들의 선택이 어쩌면 당연해 보이나 신문쟁이 입장에선 안타까울 뿐이다.

 신문 자체의 문제도 있다. 언론의 본령인 감시기능을 스스로 포기해 버리기 때문이다. 신문 등 언론을 ‘무관(無官)의 제왕(帝王)’이라거나 입법·사법·행정에 이어 ‘제4부’라고 불러주는 이유를 망각하는 것이다.

 언론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거침없이’ 지적할 수 있는 감시견(Watchdog)이 돼야 한다. 그러나 권력(정권)과 금력(광고주)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자기검열에 충실한 애완견(Lap-dog)을 자임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나아가 언론 스스로가 기득권이 돼 국민의 공익(公益)이 아니라 자기 회사의 사익(私益)만을 위해 상대가 정부라 하더라도 거침없이 덤벼드는 경비견(Guard-dog)이 되기도 한다. 이 모두 신문을 비롯한 언론의 공신력을 떨어뜨리는 행태들이다.

 제62주년 신문의 날에 맞이한 신문의 현실이다. 신문은 ‘늘어난 경쟁 매체’와 ‘줄어드는 광고시장’에다 ‘공신력 하락’ 등 3각 파도에 도출돼 있는 셈이다. 그야말로 황파(荒波)에 일엽편주 신세다.

 그래도 신문을 만든다. 기다려주는 독자가 있다. ‘촌(村)신문’의 한계가 분명함에도 제주의 오늘과 내일을 위한 역할이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설령 사회의 소금은 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필요한 곳에 소금을 갖다 놓기 위해 노력한다. 60여년 전 선배들이 첫 신문의 날에 강조했던 ‘약자의 반려’로서 신문을 화두로 잡고 오늘도 펜을 든다.

<제주매일 김철웅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