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보내는 신호 정확히 들어야 ‘상상암’ 피한다
몸이 보내는 신호 정확히 들어야 ‘상상암’ 피한다
건강염려증 |
우리 몸은 일상생활의 자연적, 인공적 환경에 노출되는 과정에서 여러 신호를 보낸다. 통증, 기침, 무기력감, 설사 등 여러 증상이 있을 수 있는데 가볍고 일시적인 증상에서 무겁고 장기간에 걸친 증상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몸의 신호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게 지내다 병을 키워 고생을 하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다가 사회생활이 힘들어질 정도가 되면 건강염려증이라는 신경증까지 발전할 수 있다.
이러한 건강염려증의 원인에 대한 가설은 4가지가 있는데 신체적 불편에 대한 역치(threshold)나 인내성(tolerance)이 낮아서 온다는 낮은 역치 가설, 감당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혔을때 환자 역할을 함으로 인해 책임과 의무를 피하려는 회피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의 변종설, 상실이나 배신으로 인한 분노, 죄책감이나 자존감의 신체변환설이 있다. 원인에 대한 설명은 여러 가지이지만 결국 우리 몸이 주는 신호에 대해 올바른 이해나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해 생기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빠르고 분주하다. 현대인들은 다양한 매체에 노출되어 있고 의식하든지 못하든지 우리의 눈과 귀를 통하여 다양한 정보들이 들어오고 있다. 특히 건강과 질병에 관한 광고나 프로그램은 인터넷, TV, 라디오를 막론하고 거의 매일 쏟아지고 있는데 이렇게 과도한 정보가 역치를 낮추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비근한 예로 속칭 ‘본3증후군’을 들 수 있는데 의대생의 경우 본과3학년이 되면 처음 내과나 외과 같은 임상과목을 배우면서 다양한 증상과 질환을 알게 되는데 본인에게 갑자기 생긴 기침 증상 하나만으로 결핵이나 폐암에 걸린 것 같은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다가 훈련을 받고 지식과 경험이 깊어지면서 증상에 대한 바른 진단을 하는 의사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다양한 증상과 질병의 진단을 업으로 하는 의사와 달리, 일반인이 본인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제한적이기 마련인데, 여유를 내어 본인의 몸과 기분상태, 본인이 가진 증상에 대해 관찰하고 나열하고 묵상해보는 시간이 건강염려증을 예방하는 한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몸은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교감/부교감(신경계), 동화/이화(내분비계), 염증/관용(면역계)처럼 두 축으로 구성되는데 본인은 어느 축이 더 강한지, 소위 ‘젖은 장작’이나 ‘마른 장작’처럼 한 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쳐 있지는 않은지, 치우쳐 있다면 균형을 맞추기 위해 어떻게 노력을 해야 할지, 어떤 증상이 있다면 증상의 강도는?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는지, 약해지는지? 아침에 심한지, 저녁에 심한지? 특정한 상황에서 나오는지, 아니면 아무 때나 나오는지? ‘솥뚜껑’ 증상을 ‘자라’ 증상으로 착각하고는 있지 않은지 등을 따져보고 묵상하다보면 조금씩 본인의 몸에 대해서 더 알게 되고 몸의 변화도 잘 느끼고 소통할 수 있게 마련이다. 또한 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진, 병에 걸렸다 나은 이웃들, 자신의 병력, 건강을 잘 유지하며 사는 어른신들의 이야기들은 귀담아 듣고 배울거리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신체적 측면 외에 건강염려증의 또 다른 측면인 과도한 스트레스나 숨겨진 우울증, 억압된 분노 같은 심리적 문제도 살펴보아야 한다. 요새 방영되는 TV 드라마에서 언급되었던 상상암이 예가 될 수 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일과 소비에 관한 슬로건처럼 현대를 사는 우리는 주중에는 일하느라 바쁘고 쉬는 때는 보상을 위한 시간과 물질의 소비로 눈과 귀가 쉴 틈이 부족하다. 우리 마음이나 심리적 내면을 사색하며 들여다 보려면 우선 눈과 귀를 일상적인 자극으로부터 피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상의 복잡하고 분주함을 내려놓고 조용한 곳을 걷거나 일기를 쓰는 것은 전문가들이 많이 권하는 방편이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바쁘게 지내며 외면하던, 내 마음 저 깊이 나도 모르고 있었던 불편한 감정들, 우울한 생각들, 남에 대한 미움을 누르고 있지는 않았는지 들여다 볼 수 있다. 다른 사람들 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던 문제들을 고백하며 객관화 할 수도 있다. 자기가 컨트롤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강박적으로 매달리며 가졌던 과도한 스트레스는 없었는지 살펴볼 수도 있다. 과도한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면 2-3분만에도 무거운 마음이 개운해지는 것을 느낄수 있다.
이 를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심리학자가 미국의 심리학자인 샤피로(Francine Shapiro)인데 그는 여러 가지 고민을 하면서 공원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눈을 빨리 움직이니까 고민하던 부정적이고 기분 나쁜 생각들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너무 신기해서 더 오래된 과거의 일, 부모와의 문제를 떠올리고 다시 시도해 보았는데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이웃에게도 실험을 해 보면서 이러한 결과에 한층 더 믿음을 갖게 되었고, 이 방법을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EMDR, 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 이라고 명명하였고 국내에도 도입되어 진료에도 활발히 적용되고 있다.
<김우진 ‧ 진단검사의학과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