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종료코너/숲이야기

폭설로 꽁꽁 얼었던 땅 위에서 들려오는 봄의 소리

제주한라병원 2018. 3. 2. 10:31

폭설로 꽁꽁 얼었던 땅 위에서 들려오는 봄의 소리

 

한경면 산양리 새신오름

    

 

 유래 없던 폭설로 사람들도 힘들었지만 차가운 땅에 지탱해서 자라는 식물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에 누그러진 날씨에 한경면 산양리에 작은 오름인 새신오름에 올랐다.


 지난 폭설의 흔적은 어디에 있을까? 서쪽 오름이라 그런지 얼었던 땅이 녹아 질퍽할 뿐 눈의 흔적은 없다. 하지만 경사면에 빨간 열매가 빛을 받아 반짝이는 ‘자금우’는 상록수인 잎이 눈에 묻혔다가 얼어서 인지 초록빛을 잃었다.


 지난 계절 덩굴식물의 지지대가 되어준 앙상한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황금빛 ‘계요등’ 열매와 여우의 눈이 저렇게 생겼을까? 검은 씨가 아슬아슬 매달려있는 ‘여우콩’ 열매는 이 계절에 숲을 장식하는 귀한 존재들이다.


 유년시절 시골 할아버지 곰방대가 신기해서 담배연기에 콜록이면서도 그 옆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 오름이나 길가에서 긴 가지에 할아버지 ‘곰방대’처럼 말라버린 씨방이 대롱대롱 달려있는 식물을 자주 보게 된다. 한번쯤 ‘곰방대’를 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름을 맞출 수 있는 ‘담배풀’이다. 한 여름 숲 가장자리에 초록색 잎과 꽃받침에 노란 꽃술이 촘촘히 땅을 보며 자라고 있던 모습이 화려한 색은 잃었지만 그 자태 그대로 말라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젊은 시절 고운 주홍빛으로 수줍게 고개 숙이며 자라던 ‘주홍서나물’도 흰 백발로 변해 버린 것이 우리의 삶을 보는 듯하다. 탐스러운 열매를 다 떨어뜨리고 씨방 껍질만 남아 있는 ‘노박덩굴’도 꽃처럼 예쁘다. 겨울에 숲에 갔다 오면 내가 좋아서 따라왔을까? 옷 여기저기 붙어 있는 녀석이 있다. ‘도깨비바늘’의 씨들이 종종번식을 위해 달라붙을 수 있는 곳에는 소리 없이 사람의 옷이나 짐승의 털에 붙어서 여러 곳에 번식을 한다. 옷에 붙어 성가시지만 바늘모양으로 기회만 노리고 있는 전투자세에 톡 건들어 본다. 매서운 한파에도 고운 자태로 남아 있는 열매들이 너무 고마워서 쉽게 지나지 못한다. 산책로 양쪽으로 쭉쭉 뻗어 있는 하얗게 분칠한 ‘복분자’ 가지가 올 여름 맛난 복분자 열매를 기대하며 오름에서 내려와 ‘비트’와 ‘양배추’를 심어놓은 밭길을 따라 걷다가 발밑에 입춘이 가져다 준 선물인 봄을 만났다. 밭 가장자리에 한들한들 보일 듯 말듯 ‘냉이’가 몽실몽실 꽃을 피우고 따뜻한 소식을 알리는 ‘봄까치(개불알풀꽃)’도 땅에서 고개를 들고 활짝 꽃을 피웠다. ‘광대나물’도 토끼모양의 꽃대를 내밀었다. ‘개쑥갓’은 겨우내 따뜻한 가장자리에서 눈에 띠지 않게 피고 지고 있었다고 노란 꽃이랑 홀씨로 변한 꽃씨가 말해준다.


 폭설로 꽁꽁 얼어도 꿈틀거리는 봄의 기운은 우리 곁에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혹독한 추위가 지나가면 그해 식물들은 더 많은 꽃과 열매를 맺게 된다고 한다. 아직 꽃샘추위까지 우리의 어깨가 움츠려야 할 시간은 길지만 그 긴 시간만큼 더욱 따뜻하고 활짝 피어나는 새 봄이 되지 않을까?


    

                     개쑥갓                                              냉이꽃

    

                  노박덩굴                                             담배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