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매거진/이태훈세계여행

유럽의 관문, 빌딩 숲 사이로 전통 스며있어

제주한라병원 2017. 11. 27. 14:50

유럽의 관문, 빌딩 숲 사이로 전통 스며있어

    

 

독일 프랑크푸르트




프랑크푸르트는 저명한 인쇄업자 요한 구텐베르크와 독일의 대문호 볼프강 폰 괴테의 고향인 동시에 프랑크소시지로도 유명한 도시이다. 과거와 현대가 동시에 공존하는 이 도시의 매력은 독일의 수준 높은 문명 기술과 유구한 역사가 서로 상생하며 발전하는 모습이다.


도시 중앙을 흐르는 마인강에 의해 남과 북으로 나뉜 프랑크푸르트는 1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도시이다. 뉘른베르크처럼 프랑크푸르트도 제2차 세계대전 때 도시 대부분이 파괴됐을 때 옛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뉘른베르크와 달리 프랑크푸르트는 현대화라는 대안을 선택했다. 그 결과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금융의 중심지이자 박물관, 극장 그리고 미술관을 갖춘 역동적인 문화 중심지로 다시 태어났다. 

 

유구한 역사적 배경과는 달리 현재 프랑크푸르트의 마천루는 유럽에서 가장 화려하고 도시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영국의 런던이나 프랑스의 파리 등처럼 고풍스런 중세의 기품보다는 초고층 빌딩들이 유럽보다는 미국의 뉴욕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구시가지로 몇 발짝 들어가면 우리에게도 익숙한 유럽풍의 건축물과 이 도시를 빛낸 역사적 인물의 흔적과 마주하게 된다.


공항에서 기차로 10여 분밖에 걸리지 않는 옛 시가지는 새롭게 지은 많은 현대식 빌딩과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 쓴 대성당, 시청사 등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활력을 빚어낸다. 우선, 중앙역을 등지고 10분 정도 걸어가면 눈앞에 높다란 대성당 첨탑이 나타난다. 붉은 사암으로 건축된 대성당은 괴테의 경건한 정신이 스며 있다.


프랑크왕국의 카롤링거 왕조 시대인 13~14세기에 건립된 이 대성당에서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선거와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또한, 괴테는 어릴 적부터 이곳에서 파이프 오르간 연주에 맞춰 성가(聖歌)를 부르며 신앙심을 키웠다고 한다. 성당 앞에는 소년 괴테가 뛰어놀던 뢰머 광장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광장 중심에는 1405년부터 정부청사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시청사가 오늘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물론 이 건물은 2차 대전이후 손상된 청사를 원형 그대로 복원한 것이다. 원래는 귀족의 저택이었던 것을 15세기 초에 프랑크푸르트 시가 사들인 것이다. 청사 2층에는 샤를마뉴에서 프란시스 2세에 이르기까지 신성로마제국 황제 52명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독일 황제들의 대관식 장소로 프랑크푸르트가 선택된 이유가 설명된 역사 기록도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이 도시 시민들의 삶의 휴식처 역할을 하는 광장 앞에는 ‘정의의 여신’이 저울과 칼을 들고 정의를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광장 주변의 작은 골목에는 아담한 카페와 선술집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데, 이곳의 단골손님이 괴테였다. 그는 라이프치히 대학을 다니면서 방학 때마다 고향으로 돌아와 선술집에서 친구들과 정치ㆍ경제ㆍ문화ㆍ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지금은 그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지만, 그를 좋아하는 팬들은 광장 주변 선술집에 앉아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괴테와의 교감을 시도한다. 이처럼 프랑크푸르트는 괴테의 젊은 시절 추억이 서린 곳이다.


광장 주변에서 또 하나의 볼거리이자 독일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대문호 괴테의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그의 생가(生家)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은 괴테가 1749년에 태어나 라이프치히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물론 대학을 다니던 동안 잠시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있었지만, 방학 때마다 이곳에서 지내며 자신의 미래를 설계했다. 현재는 괴테 기념관으로 개조돼 그가 직접 그린 그림, 친필 편지 등 다양한 전시물을 갖추고 있다. 특히, 괴테는 이곳에서 자신의 대표작 <파우스트>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집필하였다. 물론 생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지만, 과거 자료를 바탕으로 완벽하게 복원해 괴테가 살았을 당시의 모습으로 재현해 놓았다. 

 

화려하게 살다 간 괴테의 삶의 궤적은 다양한 분야에서 그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문학가 이외에 그는 많은 시간을 바이마르 공국에서 정치가로 활동했으며, <이탈리아 기행>을 쓸 때는 화가로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탈리아 출신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괴테는 독일 최고 지성인이자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의 생가에 전시된 유품들을 천천히 둘러보면 왜 그의 이름 앞에 `르네상스 시대의 마지막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는지 알 수 있다.


괴테의 흔적을 느끼고 나면 프랑크푸르트는 중세가 아닌 현대의 찬란함이 눈앞에 펼쳐진다. 사실 프랑크푸르트는 중세의 기품보다는 현대적인 요소들이 도시를 가득 채운다. 높고 다양한 빌딩 숲 사이로 유럽 고유한 전통이 스며 있는 것이다. 특히, 프랑크푸르트는 높게 솟아오른 빌딩들이 도시에 새로운 활력과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프랑크푸르트 스카이라인을 결정짓는 마천루 중 하나인 마인타워는 란데스방크 헤센 두린겐에 위치하고 있으며, 발 아래로 펼쳐지는 도시의 전망을 바라보기에 완벽한 곳이다. 54층 건물 맨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프랑크푸르트는 정말 아름답다. 맑은 날이면 40㎞ 이상 떨어진 산업지대와 시골까지 시야에 들어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