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미풍양속은 현대사회에서도 이어나가야”
"제주의 미풍양속은 현대사회에서도 이어나가야”
송정일 JIBS상임부회장
문화에 대한 단상 |
문화란 말만큼 생활 곳곳을 파고드는 단어도 없다. 기업문화, 교통문화, 외식문화, 음주문화 등등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문화라는 이름표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Culture, 즉 밭을 경작한다는 어원으로 정의된 문화는 일반적으로 지형이나 환경, 풍토, 그리고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형태에 의해 결정된다. 문화적 개성은 공동체의 자부심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문화는 우수하거나 열등한 것으로 비교되거나 재단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때 편견에 치우친 나머지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온 우리의 문화를 스스로 비하시키거나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하기도 했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파괴돼 버린 당오백, 절오백이나 새마을운동으로 자취를 감춘 초가와 올레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문화에 대한 편견은 참으로 오만하고 위험스런 것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변화를 요구하는 행동양식은 인류가 발전을 거듭해 온 중요한 가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변화 또한 과거를 교훈 삼을 때 긍정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선인들이 살아왔던 생활양식이 현실과 거리감이 있거나 설령 불합리한 것이라 할지라도 뿌리 끝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당시로서는 최상의 덕목으로 인정받고 통용됐던 가치들이다. 특히 삼무, 수눌음 등 제주의 미풍양속 가운데는 오늘날에도 이어나가야 할 덕목들이 많다.
어렸을 적에 어머니를 따라 가끔씩 다녔던 잔칫집 분위기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당시 잔칫집 음식은 지금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납쟁반에 담긴 돼지고기와 수애, 그리고 팥을 섞은 잡곡밥이 전부였다. 그런데 왜 그리도 맛있는지, 지금도 입안을 맴돈다. 어려웠던 시절이었기에 그 기억이 더 간절한지도 모르겠다. 보릿짚과 송악으로 엮은 기둥에 색동종이로 꾸민 결혼축하 장식물은 화려함으로 동심을 들뜨게 했다. 그런가하면 돼지 잡는 날, 가문잔치 등 다른 지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제주의 결혼풍속은 흥미로운 것이었다. 그러나 새마을 운동이 펼쳐지고 가정의례 준칙이라는 다소 강제성을 띤 캠페인이 펼쳐지면서 옛 혼인풍속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초가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소중한 풍속 하나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명절증후군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는 마당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하고 손가락질 할 얘기다. 그러나 세상사는 이치에 왕도가 없다 하듯이 옛 선인들의 삶의 흔적은 오늘을 돌아보는 거울이다. 제주의 결혼 풍속은 어려웠던 시절 이웃과 서로 상부상조하고 가족 간의 우의를 다지는 일종의 축제였다. 결혼식을 앞두고 이웃과 함께 돼지를 잡고, 친지들이 모여들어 음식을 장만하며, 예식절차를 논의한다. 집안의 큰 일에 일가친척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결속을 다지고, 이웃과 협동심을 발휘하는 것이다. 결혼과 같은 집안의 큰 일은 웃어른을 공경하는 가풍이 다져지는 장이었고 동네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축제이기도 했다.
지금은 예식장이나 호텔에서 예식을 치르고 식사까지 대접하는 것이 다반사다. 과거와 달리 혼인절차도 단순하고 예식도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예식은 마치 명절 때 떡 공장에서 떡 찍어내듯 꼬리에 꼬리를 물며 바쁘게 이어진다. 예식장은 젊은이들의 장난기어린 이벤트와 소란으로 떠들썩하다.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다짐하는 혼인예식이 너무 장난기 어린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그래서 교회나 성당에서 치르는 경건하고 의미있는 예식을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행해졌던 부조와 축하의 의미도 퇴색되기는 마찬가지다. 체면 때문에 또는 사업적인 처세의 방편으로 얼굴도장 찍는 겉치레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행세께 하는 사람이나 고위 관료의 자녀결혼식에 축하객들이 대거 몰려드는 게 그런 이유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의례간소화의 대상으로 낙인 찍혔던 과거의 결혼풍속은 부담스럽거나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큰 일을 치르면서 이웃 간에 서로 돕고, 또 새롭게 출발하는 가정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하나의 성스러운 절차였다. 어려웠던 시절 함께 견디어내고자 했던 아름다운 풍속이었다.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간소화되고 편해졌다고는 하나 외향은 오히려 비대해져서 혼수준비에 속이 타는 가족들, 상투적인 절차로 성의 없게 예식을 마감하는 지금의 결혼문화가 좋은 것일까? 빠르고 바쁘게만 돌아가는 세상, 그래도 가족간의 화목과 이웃끼리 우애를 나누던 예전의 결혼풍속이 그리워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판소리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동진 명창의 외침이 떠오른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