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매거진/언론인칼럼

“탐라왕국의 역사와 신화 정립, 제주의 중심가치로”

제주한라병원 2017. 8. 28. 13:38

 

“탐라왕국의 역사와 신화 정립, 제주의 중심가치로”


송정일 JIBS상임부회장

 

이 시대, 왜 탐라인가?

 

상상력과 지역적 개성이 세계로 뜨는 융복합의 시대다. 그 상상력과 지역적개성은 바로 역사. 문화 중심의 인문학에서 비롯된다. 그래서일까? 인문학에 문화예술 활동을 덧입혀 관광콘텐츠를 창출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탐라문화광장 조성이다. 특정지역을 명소로 탈바꿈시키기 위해서는 차별화가 필요하다. 바로 유일무이 개념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목관아나 김만덕 객주터가 주를 이루는 대한민국 공통의 조선시대 스토리가 과연 그 전제조건에 부합되는 것일까?

 

조선 역사가 제주의 중심가치?

중요한 것은 인문학은 관광분야 뿐만 아니라 산업과 융합해 미래발전의 큰 동력으로 작용하는 무한대의 자원이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역사적 정체성은 어쩌면 제주인, 제주로서는 굴욕적이고 돌이키고 싶지 않은 역사다. 억압과 굴종의 시대가 과연 제주, 제주인이 자랑스럽게 내세워야 할 역사관일까? 또 미래발전을 위한 최상의 유일무이의 자원으로 당당하게 표방할 수 있는 중심가치일까? 돌아볼 일이다.

 

해상왕국 탐라의 위상 흔적 지워

우리에게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주변국들과 자주적으로 교류했던 국가, 해상왕국 탐라가 있다. 고려시대까지 존속돼 온 탐라국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급격하게 쇄락의 길을 걸었다. 강자의 역사관에 의해 해상왕국 탐라의 흔적은 은폐되고 축소돼 갔다. 결국 조선왕조는 철저한 식민지 정책으로 탐라의 역사를 왜곡시키고 그 흔적마저 지우고 말았다. 자주국가로서의 탐라의 위상은 어땠을까? 당나라시기 탐라는 동아시아 해상 실크로드의 요충지로 그 활약상이 대단했다. 기록에 의하면 고대 탐라는 이미 중국의 남쪽 지방인 광동지역까지 진출하고 있었다. 당나라 시대 광동지역은 아랍과 인도, 그리고 동남아의 상인들이 몰려들던 대표적인 국제무역항이었다. 당시 탐라의 상인들은 이미 광동지역을 드나들며 세계 각지에서 온 상인들과 교류하고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있었다. 이처럼 활발한 대외교류를 통해 국가의 기반을 다졌던 탐라의 위상은 황룡사 9층탑의 내력에서도 나타난다. 황룡사 9층탑은 신라 선덕여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신라를 중심으로 3국을 통일하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염원이 깃들어 있는 탑이다. 9층탑은 당시 신라를 위협하는 주변 9개국을 상징한다고 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탐라가 4층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고대 해상왕국 탐라의 위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다. 역사문헌과 유적은 철저히 훼손되고 유린됐다. 조선시대 장기간에 걸친 식민지 정책의 결과다.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고, 새로운 산업혁명이 도래 하는 융합의 시대, 지금이야말로 우리에겐 번영과 자존의 역사 탐라왕국이 필요하다. 지워버린 역사, 그 역사를 되살려 역동적인 미래로 나아가는 중심가치로 승화시켜야 할 때다. 더불어 탐라왕국의 정통성을 자연스럽게 이어줄 탐라신화도 함께 계승해 나가야한다.

 

신화가 국가개성 살리는 시대

신화는 인류사를 담고 있는 그릇이다. 신화는 그 공동체 구성원들이 처한 자연환경과 지리적 여건, 그리고 역사적 상황들에 적응하며 터득한 지혜와 가치들이 담겨 있다. 신화를 단순히 어두웠던 시절 지어낸 이야기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한 국가가 성립될 때는 신화적 사유로 그 자주성과 정통성을 포장한다. 단군신화가 그렇고 세계 각국의 고대국가 사례가 그렇다. 탐라개국설화 역시 삼성혈에서 고양부 삼신인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한다. 모홍혈에서 나온 고양부 삼신인은 배를 타고 온 벽랑국 삼공주를 맞아 탐라국을 세운다. 따라서 탐라의 역사를 조명하려면 탐라신화를 연결시켜야 가능하다. 어둠에서 빛으로 이어지는 탐라개벽신화의 체계는 자연과 우주의 이치, 그리고 당시 시대상을 설명하고 있다. 천지개벽이 이뤄지고 설문대가 나타나 섬을 빚는다. 이어서 생명의 여신이 등장해 섬의 식생들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다시 여신 자청비가 하늘에서 오곡종자를 가지고 내려와 이 섬에 농경이 시작된다. 이러한 삶의 조건이 갖춰지자 사람들은 집단화되고 섬 곳곳에 마을이 형성된다. 마을의 형성과 팽창은 무엇을 뜻하는가? 바로 국가의 성립으로 탐라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혼돈에서 질서로 이어지는 탐라개벽신화는 세계 신화의 엑기스로 일컬어지는 그리스 신화와 너무 닮아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리스신화 역시 제주와 같은 변방의 섬인 크레타에서 발현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현실 도피의 극한 상황에서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한다. 현실의 고통을 뛰어넘을 파라다이스를 그려내고 영원히 안주할 공간 이어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크레타 섬이나 제주나 별반 다를 바 없는 조건이었기에 이렇듯 훌륭한 신화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하루하루가 고달픈 삶의 연속이고 수탈과 침략으로 고립된 섬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이러한 상상력이 낳은 신화는 지역이나 국가의 개성을 살리는 중심가치로 부각되고 있다. 무형의 자원으로 또 경제발전의 동력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탐라왕국이 있고 색 바래지 않은 원초적 신화가 있다. 하루빨리 잃어버린 탐라왕국의 역사와 보석 같은 신화를 체계적으로 정립해야 한다. 그래서 제주, 제주인의 자긍심으로 또 미래발전의 중심가치로 키워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