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인간의 모습으로 지상에 내려와 세상 다스려
역사 속 세상만사 113
- 이집트 신화 이야기 Ⅳ-
라, 인간의 모습으로 지상에 내려와 세상 다스려
앞선 세 편의 이야기에서 오시리스를 중심으로 이시스, 세트, 네프티스, 호루스, 아누비스, 토트 등 이집트 신화의 주요 캐릭터들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인공들이 등장하기 전에는 어떠했을까.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어느 신화에서나 존재하는 창조에 관한 이야기가 이집트 신화에서는 어떻게 펼쳐지는지 돌아가보자.
태초에는 어둡고 고요하며 쓸쓸한 물의 세계만이 있었고, 이 물의 신은 위대한 ‘눈’이었다. 그리고 세상의 가장 깊은 바다 속, 가장 어두운 곳에는 ‘눈’의 아들 ‘라’의 빛나는 영혼이 누워있었다. 깊은 바다속에 있다보니 외로움을 느낀 ‘라’는 다른 생명이 있다면 허전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그는 전지전능했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에 이름만 붙여주어도 그 대상은 이미 존재하게 되었다.
“나는 아침에 떠오르는 해 <케프라>가 되고, 한낮에는 타오르는 해 <라>가 되며, 저년에는 지는 해 <아툼>이 되겠다.”고 ‘라’가 말하자 그는 동쪽에서 떠올라 하늘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지는 해가 되었고, 이것이 세상의 첫날이었다. 그가 ‘슈’라고 이름을 붙이니 바람이 불었다. 바람을 만들고 나서는 비를 생각하고 ‘테프누트’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바람의 신 ‘슈’와 비의 신 ‘테프누트’는 ‘라’의 첫 창조물이었다.
바람과 비의 신은 서로 사랑하여 둘 사이에 쌍둥이가 태어났는데, 하나는 땅의 신 ‘게브’였고, 다른 하나는 하늘의 여신 ‘누트’였다. 게브가 깊은 바다 속에서 점점 위로 솟아올라와 마른 땅이 되었다면, 하늘 색 겉옷을 입은 누트는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손은 동쪽 수평선에 발은 서쪽 수평선에 딛고서 땅의 신 게브를 내려다 보았다.
또 ‘라’가 ‘하피’라고 이름을 지으니 성스러운 나일강이 이집트 땅위로 흐르기 시작했다. 창조주 ‘라’의 작업은 계속 되었다. 초목을 생각하고 이름을 지어주었더니 초목이 탄생했고, 동물을 생각하면 동물들이 존재하게 되었다. 새와 벌레와 물고기를 생각하니 역시 그대로 되었다. 지상 위의 모든 피조물들의 모양을 생각하고 이름을 말하니 그대로 존재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라’는 남자와 여자를 생각했다. 그러자 곧 이집트 땅에 많은 사람들이 살게 되었다. 그가 창조한 나일강에는 매년 물이 불었다가 몇 달이 지나면 비옥한 흙을 남기며 물이 빠졌다. 이 땅에는 곡식이 잘 자랐으므로 사람들은 배불리 먹고 편안히 살 수 있었다.
인간을 만든 후에도 매일 아침 ‘라’는 배를 타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항해를 계속했다. 동쪽 하늘에서 시작된 이 여행은 서쪽 하늘에서 끝나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은 죽은 자들의 세계인 지하세계의 하늘 <두아트>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그를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칭송했다.
하지만 질서없이 원시적으로 살던 사람들에게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라’는 깨달았다. 그는 인간의 모습으로 지상에 내려와 스스로를 ‘파라오’라고 불렀다. 그리하여 파라오 ‘라’는 수천년 동안 이집트를 풍요롭고 평화로운 땅으로 다스렸다.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파라오 ‘라’는 인간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품고 살았다. 그것은 인간을 만들 때 그가 정한 법이었다. 나이를 먹은 그의 피부는 황금빛으로, 머리는 청금색으로 변해갔으며 허리는 구부정해졌다. 사람들은 늙은 파라오를 보고 수군거렸다. “파라오가 옛날처럼 젊지도 않고 힘도 없어졌어. 걸음걸이도 굼벵이처럼 느릿느릿 걷잖아” 파라오가 늙고 힘이 약해지자 이집트 사람들은 ‘라’에게 등을 돌리고 ‘아포피스’라는 사악한 마왕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아포피스는 어둠 속의 사악한 증기에서 나온 마왕인데, 라가 쇠약해진 틈을 이용해 이집트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그들의 반항심을 부추겼다. 사람들은 라가 보는 앞에서 나쁜 짓을 서슴지 않고 행했다.
화가난 ‘라’가 말했다. “최고신들을 회의에 참석시켜라. 바람의 신 슈, 비의 신 테프누트, 하늘의 여신 누트, 땅의 신 게브도 참석하라고 해라. 가장 나이가 많은 물의 신, 눈도 잊지 말고 불러라”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