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리스가 질식사하자 온갖 재앙이 시작돼
역사 속 세상만사- 이집트 신화 이야기 Ⅰ-
오시리스가 질식사하자 온갖 재앙이 시작돼
이집트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몇 가지 있다. 피라미드, 스핑크스, 파라오, 미이라, 나일강, 호루스, 아누비스 등... 모래 사막을 배경으로 고고학자나 유물 도굴꾼들이 피라미드 속을 탐험하는 영화를 비롯해 <미이라>라는 제목의 시리즈 영화도 많이 알려져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즐기려면 그 배경이 되는 이집트 신화를 알면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이런 이집트 신화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그 중 그 뿌리격인 오시리스와 이시스, 그리고 이집트인들이 믿었던 사후세계로 가는 길목에 대해 살펴보자.
죽음이라는 것이 세상에 생겨나기 전, 오시리스는 이집트를 다스리는 신이었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죄라는 것을 몰랐다. 세상엔 폭력도 탐욕도, 시기나 증오도 없었고, 불화나 분열 같은 것도 없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정직하고 관대했으며, 시처럼 아름답고 부드러운 말을 사용했다. 신이자 왕이었던 오시리스는 백성들을 깊이 사랑하여, 농작물 재배하는 법과 논에 물 대는 법을 가르쳤고, 지혜와 신들의 법을 가르쳤다.
원래 땅(게브, 어머니)과 하늘(누트, 아버지)은 오시리스와 이시스(오시리스의 아내가 됨), 세트와 네프티스(세트의 아내가 됨)의 부모였다. 오시리스와 이시스는 둘 다 신이었기 때문에 오빠와 동생으로서는 물론 남편과 아내로서도 서로에게 죄를 짓지 않았다. 이 부부는 땅을 풍요롭게 다스렸다. 나일강을 둑으로 넘쳐흐르게 하여, 토지가 축축하고 비옥해지도록 만들었다. 그리하여 땅에서는 넉넉한 식량이 생산되었다. 지혜의 신 ‘토트’는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충실한 동반자였다. 토트는 문자와 숫자를 고안해 최초의 사람들에게 그것을 가르쳤다.
하지만 오시리스의 동생이자 황폐한 사막을 다스리는 ‘세트’는 사악한 파괴의 신이었다. 오시리스가 생명의 창조주라면 세트는 파괴의 신이었다. 천성이 어찌나 포악했던지, 그는 태어날 때 어머니의 옆구리에 구멍을 뚫어놓을 정도였다. 사람들이 관개시설을 이용해 땅을 개간하자, 세트는 오시리스가 자신의 사막 왕국 면적을 점점 줄이고 있다며 화가 났다. 세트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형을 시샘하게 되었다. 모래 언덕과 전갈과 바위들뿐인 세트의 왕국에서는 아무런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세트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 세트는 일단 오시리스의 그림자를 관찰하여 오시리스의 몸 크기를 진 다음, 오시리즈 몸 크기에 맞추어 향내나는 나무로 아름다운 관을 짰다.
건기를 좋아했던 세트는 건기가 시작되기 전에 모든 신들을 초대해 성대한 잔치를 열었다. 세트는 그 관을 현관 한가운데에 가져다 놓았다. 신들은 그 관을 보더니 저마다 향유 냄새가 난다느니, 삼나무 향기가 난다느니, 향나무 냄새가 난다니 하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신들은 장난삼아 차례로 돌아가며 그 관 속에 누워 본 뒤 연회장 안에 들어가 버렸다. 잔치에 늦게 도착한 오시리스와 단둘이 현관에 있게 된 세트는 형에게 관 속에 한 번 누워 보라고 권한다. 오시리스는 정직하고 남을 의심할 줄 모르는 성격이라 별 생각 없이 관 속에 들어가 누웠다. 그 순간 세트의 부하들이 나타나, 관 뚜껑을 덮고 못을 박은 다음 뜨거운 납으로 봉해 버렸다.
다른 신들이 잔칫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고 있다가 망치 소리를 듣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 나와 보니, 세트와 그의 부하들은 이미 관을 가지고 어두운 사막으로 도망치고 없었다. 신들은 오시리스가 관 속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세트 일행을 추격하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악의 무리들은 관을 나일강으로 던졌고, 그 무렵 오시리스는 질식사한 상태였다.
여태껏 재앙이라는 것을 몰랐던 이집트는 오시리스가 죽는 그 순간부터 온갖 재앙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세트의 사막이 비옥한 농토를 잠식하여 땅을 말려 놓았고, 그로 인해 기근이 생겼다. 사람들은 남아 있는 얼마 안되는 식량을 서로 차지하려고 싸움과 도둑질을 일삼았다. 어머니들은 굶주린 아이들의 울음 때문에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농사와 논에 물대기가 중단된 상태라, 세트 왕국의 모래는 점점 불어나 나일강 둑까지 거의 모래로 뒤덮이기에 이르렀다. 절망이 극에 달해가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