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종료코너/천일평칼럼

좋은 의사는 병과 함께 마음까지 어루만져줘야

제주한라병원 2017. 3. 29. 09:11

좋은 의사는 병과 함께 마음까지 어루만져줘야

의사에 대한 환자들의 여러 가지 생각을 잘 묘사한 일본 영화가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의사는 어떤 사람을 말하는 지를 생각케하는 영화 <우리 의사 선생님>은 일본 농촌을 배경으로 시골의사 이야기를 그린 것으로 2010년 국내 개봉됐습니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작품으로 그해 일본 아카데미 10개 부문을 휩쓸며 호평을 받았던 영화입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 오래된 간호사 오타케(요 키미코)와 마을 진료소를 지키는 닥터 이노(쇼후쿠테이 츠루베)는 마을 사람들의 전적인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친절하고 마을 사람들의 일상과 건강에 마치 가족 같은 관심을 쏟기 때문입니다. 도쿄에서 파견 나온 젊은 닥터 소마(에이타)는 잘나가는 병원장의 아들로 시골 진료소에서 근무는 어울리지 않습니다.하지만 그는 지금껏 봐왔던 의사들과는 다른 모습의 닥터 이노에게 진정한 의사의 모습을 보며 열심히 일합니다. 경영을 병원의 최우선으로 삼는 아버지와는 달리 의료의 참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어느 날 닥터 이노가 갑자기 사라집니다. 그가 정성을 쏟던 위암 여성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딸이 의사이지만, 딸에게 짐이 될까 싶어 그녀는 비밀로 하고 싶어 했습니다. 닥터 이노는그 녀의 딸이 나타나 그의 진료에 의문을 제기하자 처음에는 그녀와의 약속을 위해, 위궤양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하지만 위암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를 바라자 닥터 이노는 몸을 감춥니다.


그의 실종으로 경찰 조사가 진행되면서 그의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합니다. 그는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의료기 회사의 판매 담당 영업사원으로 우여곡절 끝에 이 시골마을에 정착하게된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따랐던 닥터 이노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냅니다.


과연 마을 사람들이 원한 것은 좋은 의사였을까요? 아니면 진짜 의사였을까요? 영화는 의사의 참 모습이란 어떤 것인가 질문합니다.


우리는 의사의 본 모습보다 그 포장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닐까하고 말이지요.


의사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많습니다. 친절하고, 설명도 잘해야 하고, 판단력도 좋아야 하고, 결단력도 있어야 하며, 용기와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모든 의사가 이러하지는 못하겠지만 의사들이 가지도록 노력해야 할 자질입니다.


요즘은 한 가지 더 필요한 선택이 있습니다. 돈 잘 버는 의사입니다. 대학 병원도 개인 병원도 이제는 기업입니다. 기업에서 일하는 의사들의 어깨가 무겁습니다.


환자들이 바라는 것은 진정성입니다. 정말 나를 가족처럼 치료해 줄 수 있는 의사, 화려한 포장이 아닌 숨겨진 진실한 마음을 가진 의사, 그리고 멋진 실력이 검증된 의사, 이런 의사를 찾기는 힘들겠지만 말입니다.

좋은 의사란 어떤 의사인가? "과연 의사를 규정하는데 합당한 말인가?”


의사들은 누구나 좋은 의사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그러나 현실은 의사로서 좋은 마음을 가지고 아픈 병자를 치유해주고 싶지만 행동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좋은 의사란 아픈 사람의 병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의사가 좋은 의사입니다. 질병을 잘 고치고 수술을 잘하는 의사는 좋은 의사라고 여겨지지는 않고 잘하는 의사라고 생각합니다. 환자는 기술적인 전문가보다는 나의 몸과 마음을 헤아리고 사랑할 수 있는 의사를 기대합니다.


의사와 환자 간 신뢰가 매우 중요합니다. 의료인과 환자 상호간 존중을 통해 건강문화가 이루어집니다.

환자 한명 한명에게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지만 의사는 최대한 ‘여유’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느 의사는 환자가 동네병원으로 옮기고 싶다고 하자 그 환자와 20분 이상 얘기를 했더니 그 환자가 “의사랑 이렇게 길게 얘기해본 것이 처음”이라며 계속 자신의 병원에 다니기로 했다 고 합니다.


입원하고 있을 때 환자나 보호자는 아무리 좋은 병원이라도 잠자리나 여러 가지가 불편하게 느끼기 마련입니다. 병에 대한 공포, 불안함도 커서 의료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주고 공감해주길 바랍니다.


얼마 전 한국일보에 나온 칼럼 <삶과 문화> 중 ‘의사의 손바닥’을 기고한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글 내용은 감동적이었습니다.


글 내용을 간추려 보면 ‘내 첫 병원 실습은 소아청소년과였다. 거기서 나는 지금도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다. 그날 우리는 회진을 따라 돌고 있었다. 평소처럼 교수님은 병동에 있는 자신의 환아들을 진료하곤 아래층에 있는 환아를 보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 안에는 마침 아이를 동반한 한 아주머니가 있었다. 아주머니는 교수님과 안면이 있던 사이인 듯 반갑게 인사했다. 교수님은 웃는 얼굴로 인사를 받아 주었다. 느낌상 교수님이 늘 보던 보호자는 아니었고 다만 몇 번쯤 마주쳤던 사이로 보였다. 의례적인 인사가 지나고, 아주머니는 금방 아이에게 화제를 옮겼다. “선생님, 저희 아이가 요새 골골대서, 괜찮나 좀 봐주세요.”


막 내려가고 있는 엘리베이터였다. 진료하기에는 환경이 적절하지 않았고 시간도 아주 짧았다. 실습을 나온 우리들은 교수님이 이 난처한 상황에서 과연 아이를 어떻게 진료할지 지켜보았고, 교수님은 전혀 망설임 없이 “어디 보자.” 교수님은 일단, 아이에게 손을 뻗어 이마에 손을 댔다. 특이했던 것은 머리 모양이 온전히 느껴지겠다 싶게 오른손으로 아이의 이마를 전부 가리고 왼손으로 뒤통수를 감쌌던 것이다.


몸을 굽혀 양손을 뻗은 교수님과, 눈까지 가려진 채 가만히 서 있던 조그마한 아이를 지켜보자, 흡사 열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재는 장면 같았다. 한동안 교수님은 그 상태로 아이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열은 없는데, 많이 골골대나요?”


실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주머니는 아이를 정식으로 진료해달라고 한 것은 아니었고, 다만 아이를 이해하고 사랑을 나누어 주었으면 했다.


우리가 보았던 광경은, 이미 충분히 아이를 사랑하고 보듬는 모습이었다. 그 혼잡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얼마나 더 훌륭하게 마음이 오갈 수 있었을까. 아주머니는 아이가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하곤, 감사함을 표시했다. 교수님은 호쾌하게 아이에게 건강하라는 덕담을 남겼다.


나는 어느덧 응급의학과 의사가 되었다. 일과는 매번 혼잡하고 혼란스러웠고, 죽어가는 사람은 예기치 않게 나타났다. 그래서 각자의 고통에 시달리다 응급실로 몰려든 사람들 중에선, 위급한 다른 사람 때문에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 환자들의 볼멘소리를 듣고 이해시키는 것도 역시 내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일견 체온을 측정하는 것 같던 그 장면을 떠올리곤 했다. 나는 하루에도 수없이 환자에게 다가가야 했다. 일단 환자와 가까워지며 눈빛을 교환하면, 그 환자가 오래 기다린 탓에 무엇인가 억하심정을 호소하고 싶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 나는 환자에게 다가가자마자 이마에 깊게 푹 손바닥을 얹는다. 환자의 이마에서는 온기가 느껴지고, 방금까지 다급했던 열기와 땀내가 훅 밀어 닥친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떻게, 무슨 일로 오셨나요.”


방금 자신의 체온을 나누어 가진 사람을 미워하거나 이해하지 못할 수 있을까. 나는 대화를 이어가며 그들의 표정이 안온해지는 광경을 본다. 그리고 그들의 호소를 귀담아듣기 시작한다.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그들의 마음속에 큰 보폭으로 한 걸음 다가가 사람을 대하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