돔베물-빌레못-송애물로 이어지는 생활의 터전
돔베물-빌레못-송애물로 이어지는 생활의 터전
애월읍 어음리 벵듸
▲ 돔베물
‘주변 지역에 비해 넓고 평평한 들판 또는 벌판’이라고 칭하는 ‘벵듸’를 찾아 답사하면서 그 필요성과 중요성을 전문가가 아니라 탐사자로 그 변화를 지켜보기로 하면서 처음으로 ‘어림비’의 심장부가 될 수 있는 애월읍 어음리를 찾았다.
어음리 주민들은 어음리(어음 1,2리 포함)를 어름비라고 불렀다. 어림빌레, 어린빌레, 어름비, 어음 이라는 이름으로도 알 수 있듯이 마을 곳곳이 넓은 암반인 ‘빌레’로 되어있어 넓은 ‘벵듸’가 형성하기 좋은 조건이다. 드넓은 들판과 벌판위에 집을 짓고 밭을 개간하여 생활의 터전을 잡았으며 개간하지 못한 곳에는 물이 고이면서 자연습지가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벵듸’위에 만들어진 습지들은 옛날에는 식수와 생활수, 우마들의 급수장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빌레못 | 송애물 |
어음1리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곳이 두 개의 물통(습지)이다. 누구나 한번쯤 쉬어가게 하는 이곳은 300여 년 전 마을에 샘물이 나올 곳을 찾아 유명한 풍수지리사가 이곳을 찾아 제를 지내고 다음날 큰비가 내리면서 물이 고였는데 전날 제를 지낼 때 만든 도마(돔베)가 사라졌는데 100년 후 이곳 물위에 떠올라서 ‘돔베물’이라 불리어지는 곳이다. 할머니 옆에서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편안해지듯 이곳의 정자에 앉아 물속에서 자라는 버드나무의 흔들림에 취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된다.
어음리의 벵듸를 제대로 보고 싶다면 돔베물에서 시작해서 1.5km정도 농로를 따라 걸어가는 ‘빌레못 올레길’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빌레못동굴’까지 밭담을 따라 걸어가다보면 ‘빌레못’이라는 작은 습지가 두 개 경계를 이루며 발길을 멈추게한다. 예전에 물이 귀하던 시절에는 위쪽에는 식수와 생활수, 아래쪽은 우마들의 급수장으로 썼으며 아이들의 물 놀이터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빌레 위에는 물이 마르지 않으며 수생 동식물들의 서식지로 사계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흰 눈이 온 섬을 덮는 추위에도 물속에는 어김없이 개구리 알이 무리지어 따뜻한 봄을 기다고 있다. 한쪽 습지에는 지난여름의 화려한 연꽃의 향연을 연상하게 하는 연밥과 꽃대만 덩그러니 습지를 지키고 있다.
빌레못을 지나 ‘빌레동굴’에 도착하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탄성이 나온다. 누렇게 말라버린 나뭇가지와 주위의 식물들과는 다르게 동굴입구에는 초록의 싱그러움이 천상을 만난 듯 신비롭다. 동굴 안에서 새어나오는 따뜻한 온기는 추위에 떨고 있는 동물들이 몸을 녹이기에 안성맞춤이다. 얼어 있는 내 손도 녹이며 주위에는 계절과 상관없이 앙증맞게 피어있는 작은 야생화에 눈을 맞춰본다. ‘큰개불알풀꽃’ ‘방가지똥풀’ ‘나도물통이’ ‘개구리발톱’ ‘갯무’ ‘광대나물’ ‘냉이꽃’ 등 추위를 잊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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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나물 | 냉이꽃 | 방가지똥풀 |
짧은 트레킹길이 아쉬워 마을 안쪽에 밭과 밭 사이 경계를 이루며 주걱모양을 한 마르지 않는 ‘송애물’이라는 물통을 찾아 봤다. 송애는 송애기 즉 ‘송아지’를 뜻하는 제주어의 준말이다. 예전에는 주민들의 빨래터이며 목욕도 했으나, 주로 소먹이 물로 이용했다고 한다.
마을 향토 자료에는 궁 골이 터져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고 하니, 현재의 모습은 예전과 달랐던 것으로 추측된다. 한쪽에는 속이 차 올라오는 양배추 밭과 수확이 다 끝난 브로콜리 밭에는 중요한 물 공급원이 되고 있다. 가장자리 물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도롱뇽알’을 보면서 햇볕이 내리쬐던 여름날 초록의 ‘개구리밥’들이 습지를 덮고 있던 기억이 난다. 주변의 밭에서 과도한 농약 살포만 없다면 ‘도롱뇽’이 다 부화되어 또 이곳에 알을 낳길 간절하게 바란다.
◀ 하늘타리
밭담 넘어 주렁주렁 노란 열매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늘타리’ 열매이다. 처음 제주에 시집와서 시부모님께서 손에 쥐어주시면서 “부엌에 걸어두라”고 하시던 그 열매이다. 이유도 묻지 않고 그냥 시키는 대로 했는데…. 그 이유를 알고 보니 눈도 입도 없어서 잡귀가 들어와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으니깐 돌아 가버려서 잡귀를 쫒아 준다고 한다. 산과 들, 밭에도 집 담 주위에서도 가장 흔하게 보는 열매이지만 그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쉽게 외면하지 못 하는 것 같다.
우리의 생명수를 품고 있던 ‘벵듸’가 그 역할이 미흡해졌다고 방치되고 난개발로 사라지지 않길 바라며 희망찬 봄에 다시 찾아 올 것을 기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