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소를 방목하던 생활의 터전으로 탐라가 숨쉬는 곳
마소를 방목하던 생활의 터전으로 탐라가 숨쉬는 곳
‘벵듸’이야기
새해가 시작되면서 무엇인가 새롭게 시작해야 될듯하지만 이어지는 생활은 특별히 달라지는 게 없다. 생활은 그대로 이지만 숲의 대한 글은 조금 다른 색으로 변화를 갖고 싶어서 올해는 생소할 수 있는 ‘벵듸’라는 주제로 제주도의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자연이야기를 해보려한다.
‘벵듸’는 순수 제주어이며 사전적 정의는 ‘널따란 벌판, 넓은 벌, 조금 높고 평평한 땅, 넓은 들, 넓고 큰 풀밭 등으로 표기 되어있다. 뜻을 종합해보면 넓은 들판, 제주사람들이 말하는 ‘드르’가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오름’과 ‘곶자왈’같이 보편화 되지도 않았지만 의미도 정확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부모님세대에서 중장년층은 그 곳에서 소와 말을 방목하며 공동목장으로 생활의 터전이었던 곳이다. 하지만 지질과 지형적인 특징이 넓게 깔린 암석 즉 제주어인 ‘빌레’로 되어 있어 농사를 짓거나 생활하기에 적합하지 않았으며 가축을 기르는 가구 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쓸모없는 땅으로 방치되었다. 그렇게 버려진 땅이지만 소유권이 있기에 주인들은 세금을 내야 했고 억울하게 느껴질 때 골프장 개발자들의 손이 구세주가 되어 너도 나도 팔아버려서 지금 이름 있는 골프장은 거의 다 ‘벵듸’ 위에 만들어 졌다. 그럼 왜 그렇게 버려진 땅을 팔았는데 문제가 될까?
그 땅 안에는 중요한 동․식물들의 서식처가 되는 ‘습지’를 품고 있다. 더 중요한 건 원초적인 제주만의 비경이 그 곳에 남아 있으며 꼭 지켜야 될 우리의 과거와 미래가 바로 제주도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추상적일 수 있겠지만 ‘벵듸’에는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제주의 생활 문화를 말해 주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소중하고 아름다운 곳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한 단체에서 몇 년 전부터 ‘벵듸’조사를 시작하게 되었고 조금씩 알려지고 있으며 얼마 전부터 필자도 그 조사에 참여하면서 정말 중요한 곳이라는 걸 느끼고 깨달고 ‘벵듸’의 무한한 매력을 전하고 싶어서 부족한 글이지만 올리려한다.
제주도에는 ‘…벵듸’ ‘벵듸…’라는 지명을 지닌 곳이 160여 곳이 있다고 한다. 크게 세 개의 지역으로 나누며 수산~성읍 1119번도로를 중심으로 좌우로 펼쳐진 곳을 ‘수산벵듸(수산평)’이라고 하며 남원읍 수망리 물영아리오름에서 표선면 가시리 대록산 사이의 넓은 초지대을 ‘녹산장’역시 벵듸에 들어가며 애월읍 어음리, 봉성리, 납읍리, 상가리 등을 ‘어림비’라고 부르며 역시 벵듸가 분포되어있는 곳이다. 이렇게 넓은 지역을 다 이야기 할 수는 없고 가장 아기자기한 멋을 가지고 있는 ‘어림비’ 벵듸에 숨 쉬고 있는 자연 이야기를 하려한다. 작년 1년 동안 ‘어림비’일대의 ‘벵듸’를 조사하면서 발견한 크고 작은 습지는 17곳이었으며 물이 사계절 마르지 않는 곳이 있는 반면에 비가 오면 고였다가 다음에 가면 흔적만 남아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언제나 새롭게 느껴지는 설렘은 늘 감동이다. 수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여름에는 철새들의 안식처이며 동물들의 오아시스가 되어주기도 하는 ‘벵듸’ 안의 습지는 많은 이야기를 전해 줄 것이다. 하늘과 오름이 수면에 펼쳐지는 반영은 어디에도 비출 수 없는 비경 중의 비경이다.
매서운 한파가 지나는 ‘벵듸’의 드넓은 초원의 겨울 이야기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