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종료코너/숲이야기

사계절 언제나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오는 바람의 친구

제주한라병원 2016. 12. 27. 09:52

사계절 언제나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오는 바람의 친구
용눈이 오름


“윙~~윙~~~”아침에 살짝 열어둔 창문사이로 들려오는 겨울 바람소리에 문득 ‘바람의 언덕’ 용눈이 오름에 가고 싶어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밖을 나서는데 볼에 스치는 차가운 바람에 기분이 상쾌하다. 어느 유명한 사진작가는 제주의 바람을 앵글에 담고 싶어 수십, 수백번, 수천번, 올랐다는 용눈이 오름에는 제주의 바람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속해있는 ‘용눈이 오름’은 이제 너무나 유명해져서 장황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멀리서 봐도 잘 다듬어진 부드러운 곡선이 언덕을 이루며 편안하게 찾아오는 이들을 맞이한다. 오름의 모습은 동서남북 사방에서 보는 모습이 다 다르다. 오름을 많이 오르지 않은 사람들은 주변에 있는 오름이 한두 번 가봤던 곳이라도 방향이 바뀌면 생소해서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어 그 매력에 많은 사람이 오름을 오르고 있을 것이다.


민들레 

찔레 


‘용눈이 오름’ 입구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아주 큰 ‘왕릉(王陵)’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높이는 있지만 겁내지 않을 높이라서 쉽게 등산로로 발을 옮기게 하는데 야자수매트를 따라 천천히 걷다보면 ‘와우~’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게 된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정신이 바짝 드는 기분은 아주 시원하다. 모자를 다시 고쳐 쓰고 점점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면 오름의 옆모습이 보인다. 잘록한 허리선에 태양의 빛으로 억새가 눈이 부시게 반짝이고 바람이 불어주는 노래에 춤을 추듯 흔들리는 금빛 물결은 ‘용눈이 오름’의 마력이다. 그 마력에 이끌려 오르다보면 낮은 능선 위에 사방을 관망하는듯 잘 쌓아 놓은 돌담 안에 무덤의 주인이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그 곳으로 이끄는 듯 길이 나눠져 있다. 낮은 높이에도 사방의 시원한 조망과 풍광이 그 곳에 누워계시는 망자도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덤과 함께 주위의 풍경을 사진에 담고 보니 왜 제주도에서는 무덤을 ‘산’이라고 하는지 또한 무덤을 싸고 있는 돌담을 ‘산담’이라고 하는지 새삼 느끼게 한다. 오름 전체는 늙어버린 억새만 보이는데 능선 곳곳에 말들이 고개 한번 들지 않고 무엇인가 부지런히 먹고 있어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초록의 풀들이 억새사이에서 자라고 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따뜻한 봄에 꽃을 피우기 위해 땅에 밀착해서 자라는 ‘로제트식물’인 민들레 같은 초록식물들이 싸늘한 민둥산의 생명이 되어주기도 한다. 살짝 물이 들어있는 ‘찔레’의 어린잎도 희망을 느끼게 한다. 남쪽 한라산을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 갈림길이 나오는 능선에 오르면 움푹 파인 굼부리가 물결처럼 이쪽저쪽 능선을 왔다 갔다 하면서 선을 만들어 세 개의 큰 웅덩이와 같이 펼쳐져 있다. 글로 표현하기 힘든 모양의 아름다운 곡선 너머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이고 올라가면서 점점 ‘일출봉’이 시아에서 사라지고 왼쪽으로 우도가 밀려오듯 펼쳐지는 모습도 빼놓을 수 없다. 정상과 능선에 오르니 사진을 찍고 있는데 바람에 내 몸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앞으로 밀리고 있다. 뒤에서는 여행객인 듯 어린 여대생들의 비명소리가 바람에 묻혀 멀리 퍼지고 그 자리에 힘을 다해 버티고 있어 보려고 하지만 버틸 수 없을 만큼 거센 바람이 분다. 언제나 바람을 안고 있는 ‘용눈이 오름’이지만 오늘처럼 거센 바람은 처음이다. 그렇게 바람에 힘이 빼기고 정신없이 바람을 피해 내려오는 길은 발걸음이 가볍다. 12월! 지난 한 해 아쉬움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그 무거운 마음을 바람이 다 날려 버렸나보다!


유난히 바람이 많아 나무들이 크게 자랄 수 없어 민둥산인 ‘용눈이 오름’에는 사계절 언제나 새로운 매력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만 이렇게 추운 겨울에 오르면 바람과 억새가 봄이 올 때까지 장난치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잠시 마음을 비우며 새해를 맞이하는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