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이는 억새 물결 따라 가을에 빠지다!
출렁이는 억새 물결 따라 가을에 빠지다!
쫄븐갑마장길
10월! 가을이다.
억새의 붉은 꽃이 떨어지고 은빛으로 출렁이게 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오름이 있다.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따라비 오름’이다. 가을이 되면 오름을 좀 다녀 본사람 이라면, 가을에 따라비오름을 올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은빛 물결의 ‘따라비오름’을 떠올릴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단순히 오름을 오르고 내리는 것이 아니라 둘레길을 만들어 트레킹 길을 즐기게 되었다. 가시리 역시 마을의 대표되는 오름인 큰사슴이오름과 따라비를 묶어서 트레킹 길을 마을의 상품으로 만들었다. 마을에서 시작되는 20km의 ‘갑마장길’과 10km의 ‘쫄븐갑마장길’은 조선시대 최고의 말인 갑마(甲馬)를 길러 나라에 진상했던 선조들의 목축문화도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길이기도 하다. ‘따라비오름’의 억새의 향연을 감상하기에는 ‘쫄븐갑마장길’ 중에도 5km정도의 상잣성길에서 따라비오름까지 왕복하는 길도 추천하고 싶다.
최고의 말을 기르기 위해 만들어 놓았을 돌담길을 따라 오솔길이 시작되면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게 된다. 파란하늘과 검은 돌담길을 따라 초록의 상록수가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이다. 어디든 옥에 티가 있는 법인가? 얼마 전부터 새소리가 들여야 할 건데 ‘윙윙’ 바람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풍력발전기가 어느 사이 이 일대에 수십 대가 세워져있다. 대체 에너지가 시급한 요즘 필요한 풍력발전기이지만 자연경관의 파괴와 동․식물들의 희생 아닌 희생을 요구해야하는 현실에 미안한 마음과 책임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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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부쟁이 | 야고 | 미역취 |
잣성길이 끝나면 삼나무 숲길이 기다리고 있다. 빼곡해서 날씬한 나무들 사이 길을 걸으면 내 몸속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얼마 전 태풍 ‘차바’가 온섬을 뒤흔들고 가면서 이곳 역시 피해가지 못 했나보다. 곳곳에 삼나무들이 쓰러져 우회하는 길이 생기기도 했다.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걷다보면 오름 기슭에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야자수 매트 가장자리에 야생화들이 길 안내를 해준다. 노란 ‘마타리’가 보인다. 옛 가야국의 슬픈 사랑이 담겨있다는데 짙은 노란색은 황색으로 보일 정도로 발랄하다. ‘뚝갈’이란 특이한 이름의 하얀 꽃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비슷한 식물이 많아서 구별하기가 까다롭지만 특징만 잘 이해를 하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식물들은 비슷하다 못해 거의 흡사한 꽃을 피우는 것들이 많은데 그런 아이들이 같은 시기에 꽃과 열매를 맺는다면 매개체들이 편식을 하게 되어 종자 번식에 어려움이 생길 것이다. 그래서 자기들만의 생존 규칙(?)이 있다. 계절과 피는 시기를 달리해서 번식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게 한다는 걸 여러 해 야생화들과 눈을 맞추면 알 수 있다.
오름 정상까지 가을꽃들이 발길을 즐겁게 해준다.
억새의 뿌리에 기생하는 ‘야고’는 스스로 광합성을 할 수 없어 ‘양하’나 억새에 기생하는데 발아래에서 자기를 봐달라고 소리치 듯 나팔모양의 꽃이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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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잔대 | 산부추 | 참취 |
진한 보라색의 ‘당잔대’의 아름다운 종소리가 오름에 울려 퍼진다. 가을의 대표 꽃 국화과의 연보라색의 ‘쑥부쟁이’는 바닷가에도 산과 들에도 자기세상을 맞은 듯하다. 바람코지 돌틈에서 야무지고 단단하게 ‘삽주’가 흰색 꽃술의 암꽃과 분홍빛의 수꽃이 나란히 피어있다. 오름에 쉽게 찾아보기 힘든 ‘삽주’는 매년 이 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 더욱 반갑다. 보라색이지만 부추꽃이 피었다. 산에 웬 부추꽃? 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산에 자라는 부추라서 ‘산부추’다. 한라산 자락에 피는 부추는 환경에 따라 다른 특징을 가져서 ‘한라부추’라고 한다. 살짝 가파른 길을 올라 정상에 오르면 지친 마음을 이해하듯 ‘지칭개’가 멀리 한라산을 바라보며 피어있다.
따라비는 민간에서 “땅할아버지”라는 뜻으로 불리 듯 오름 주위에는 가족을 거느리고 있다. 장자오름, 모지오름, 새끼오름이 나란히 따라비오름을 바라보며 있는 모습에서 가족을 감싸 안 듯 포근한 할아버지 품을 느낄 수 있다.
‘따라비오름’은 세 개의 분화구를 가지고 있으며 분화구 능선에서 춤을 추는 은빛 억새는 말 그대로 장관이다. 올해는 태풍이 지나가면서 억새들이 많이 쓰러졌지만 여전히 그 아름다움은 감동을 준다.
시작점을 잘 찾으면 분화구 사이 길을 지나 능선을 다 탈 수가 있다. 한 바퀴 돌아 동쪽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오름을 끼고 둘레길을 돌아 삼나무길과 잣성길을 다시 걸어 시작한 곳에서 끝난다.
가볍게 걷고 오름도 오르고 가을꽃도 만나고 출렁이는 억새에 내 몸을 맡겨보고 싶으면 가시리 ‘따라비오름’에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