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꽃과 나무들이 가을맞이 준비로 한창 분주
온갖 꽃과 나무들이 가을맞이 준비로 한창 분주
<한라생태숲>
어느 순간 열어 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서늘해서 새벽에 눈을 떠 창문을 닫고 자게 되더니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가을이구나! 하고 느낀다.
여름의 끝자락을 잡고 있는 가을 문턱에는 숲에도 가을 맞이 준비들이 한창이다.
분주한 숲의 기운을 받기위해 ‘한라생태숲’을 찾았다.
516도로에 위치한 ‘한라생태숲’은 숲이 훼손되어 방치되었던 야초지를 원래의 숲으로 복원 조성한 곳으로 난대성 식물에서부터 한라산 고산식물까지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편안한 휴식공간과 다양한 자연생태계를 관찰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이라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특히 ‘숫 모르 숲길’을 만들어 길게는 절물자연휴양림과 노루생태공원까지 이어지며 짧게는 30분정도의 거리를 순환할 수 있게 만들어 누구나 편안하게 숲을 느낄 수 있게 조성되어 있다.
탐방안내소를 돌아 오솔길을 초입부터 산딸나무에 탐스러운 열매들이 소복이 가지위에 달려있다. 초록색에서 주홍색으로 다시 붉은색으로 익어가는 산딸나무 열매는 과자가 없던 시절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던 아이들의 좋은 간식거리였다고 한다.
지금은 단맛에 길들어져 있어 어지간한 단맛에는 아이들이 맛나다는 말은 안하겠지만 그래도 숲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재미로 따먹어보는 맛은 일품이다.
어느 해보다도 힘겨울 만큼 꽃을 피우던 나무들은 열매도 힘겹게 매달고 있다.
가막살열매 | 닭의장풀 | 방울꽃 |
때죽나무, 가막살나무, 팥배나무, 마가목, 백당나무, 말오줌때나무, 까마귀베게 등등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들은 종족 번식을 위해 본능적으로 계체를 이어가고 있다. 스스로 위기감을 느끼면 꽃을 피우지 않던 ‘조릿대’같은 식물들은 몇 년 만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죽음(?)을 맞이 하듯이 올해는 식물들이 어떤 위기감이 느꼈는지 아니면 개체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였는지 몰라도 그 많은 자식들을 키우느라 살인적인 더위에 정말 힘겹게 여름을 보냈을 것이다. 그렇게 모든 에너지를 다해 키운 열매들은 이제 멀리 날아가든지 새들의 먹이가 되어 또 다른 숲에 가서 그 종족을 번식시킬 것이다.
식물은 씨가 떨어진다고 다 싹을 피우지 않는다. 썩어서 발아를 못 할 수도 있지만 자기가 싹을 피울 환경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 일 년이 될 수도 있고 몇십년, 몇백년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숲은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다.
열매의 유혹에 눈을 떼지 못 할 때 스치고 지나는 풀숲에는 올망졸망 풀꽃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깔때기 모양의 ‘물봉선화’가 이슬을 머금고 합창을 하고 있는 모습에 발길이 멈춘다. 울밑의 봉선화하고는 닮은 듯 다르게 생긴 물봉선화 옆에 조용히 나도 봐주세요? 소리치는 ‘방울꽃’도 가을의 시작을 알린다.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사람들의 ‘구황식물’로 쓰였던 ‘무릇 꽃’은 여름의 끝자락에 가을 꽃들을 마중하러 나온 듯 여기저기 피어있다. 향기만 맡아도 몸이 좋아질 것 같은 더덕은 꽃도 예쁘다. 땡땡땡… 어릴적 학교 종을 닮은 더덕 꽃도 다소곳이 피어 여름을 떠나보내고 있으며 작지만 무리지어 피어있어 눈길을 머물게 하는 ‘참나물 꽃’… 주렁주렁 길게 늘어진 ‘단풍마 꽃’도 군락을 이루고 있으면 그냥 지나치질 못한다. 사위를 생각하는 장모님의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이 담아 있는 ‘사위질빵’도 하얀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고 있다.
산딸나무열매 | 소황금 | 전주물꼬리 |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눈도장을 찍다보면 어느새 숲길이 끝나게 된다. 강열한 한여름의 태양에 맞서 당당히 살아남은 나무들의 위풍에 에너지를 받으며 생태숲을 한바퀴 돌다보면 커다란 연못을 만나게 된다. 원래 작은 습지로 남아 있던 곳을 좀 더 크게 조성해 놓은 연못이다.
연못 안에는 ‘수련’을 비롯해서 어부가 물고기를 잡는 통발을 닮았다는 ‘통발’이라는 손톱만한 노란 꽃이 씨를 뿌려놓은 듯 연못 가득 피어 있다.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흔들리며 피어 있는 보라색의 ‘부처꽃’도 참 곱다. 잔잔하게 피어있는 수많은 풀꽃들 사이로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를 보며 잠시 머무는 여유로움에 행복하다.
울창한 숲이 아니라 사람의 손길이 만든 생태 숲이지만 나무가 있고 풀이 있으며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 되는 물이 있는 곳에 작은 생명체의 움직임에 우리들은 힘을 얻고 용기를 얻어 일상의 생활이 즐거워질 것이다.
더위에 지쳐 가을을 빨리 느끼고 싶어지면 지금 ‘한라생태숲’에서 가을을 만나러 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