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산 그리고 아픈 역사까지 품고 걷는다
바다, 산 그리고 아픈 역사까지 품고 걷는다
송악산둘레길
들녘에 보리가 물결치는 요즘엔 저절로 가파도 생각이 난다. 배낭을 메고 모슬포 선착장에 갔는데 주차장까지 늘어선 줄에 가파도에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돌아서 가는 길에 생각나는 곳이 송악산 둘레길이었다.
4.3사건의 아픔이 묻혀 있는 섯알오름 맞은편에서 시작해 왼쪽에는 바다를 오른쪽에는 송악산 능선을 따라 1전망대, 2전망대, 3전망대 종점까지 걷는 2.8km의 둘레길이다.
2015년 8월부터 송악산의 식생복원과 안전지대 설치를 위한 휴식연제로 통제가 되어 송악산 정상을 바라만 보고 걸어야 하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오름의 선을 감상하며 걷는 느낌은 또 다른 설레임이다.
조금은 가파른 능선길에 큰 숨쉬며 돌아보면 힘 있게 우뚝 서있는 산방산과 인자한 어머니 품처럼 펼쳐진 한라산을 사이에 두고 형제의 섬 그리고 넓은 바다가 한 폭의 그림처럼 한 눈에 들어오는 풍광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멋진 감동이다.
예전에는 1전망대까지 차로 올라갈 수가 있게 초입의 오르막길이 시멘트로 되어 있다. 흙길이면 하고 걷지만 그래도 발아래 양쪽으로 피어 있는 들꽃들과 눈인사하며 걷는 길은 마냥 즐겁다. 봄의 절정이 되면 산이나 바다나 들판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꽃밭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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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무 | 돈나무 | 멍석딸기 |
그 중에 연보라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꽃잎을 가진 바닷가에 자라는 무꽃인 ‘갯무꽃’이 해안 절벽에 무더기로 피어 커다란 꽃다발을 안은 듯 바다배경으로 사진에 담으면 누구나 멋진 사진작가가 된다.
1전망대를 지나 능선을 살짝 넘으면 또 한번 감탄하게 되는데…. 산 아래 넓게 깔린 들판과 푸른 바다 사이로 여인의 허리선처럼 흘러내리듯 자연이 만든 S자 길이 너무나 곱기 때문이다. 빨리 걸으면 아쉬워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느려지는 길이기도 하다. 계단과 흙길을 번갈아 걸어 2전망대에서 물 한 모금, 차 한잔하고 걷기시작하면 바다위에 얇게 깔려 있는 듯 가파도와 마라도가 떠있다.
우리나라 최남단인 마라도가 가파도보다 1/3 정도 넓이라는 걸 여기서 알 수가 있다. 섬을 찾아가 둘러보면 좋겠지만 멀리서 관망하는 재미도 느껴볼 수 있어 추천해주고 싶다.
5월에 바닷가를 걸으면 향긋한 꽃내음에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되는데 바로 ‘돈나무’꽃 향기이다. 도톰하고 윤기나는 나뭇잎이 올망졸망 피어있는 하얀꽃을 받쳐 주 듯 피어있는 ‘돈나무’는 이름을 알고 나면 한 번 더 눈길이 가는데…. 가을에 맺는 열매에 씨앗에 끈적한 점액이 묻어 있어서 날아가면 어디든 붙어서 발아를 하는데 번식력이 최고 이다.
제법 넓은 초지에 누구나 한번쯤은 꽃반지와 화관을 만들어 봤을 ‘토끼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잠시 발길을 멈추어 오늘같이 좋은 날엔 네잎클로버라도 만나지 않을까? 한참을 뒤져보다 노란 병아리모양의 앙증맞은 꽃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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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아재비 | 벌노랑이 | 살갈퀴 |
땅에 깔리듯 노랗게 물들어 있는 꽃은 ‘벌노랑이’라는 식물인데 들에 피는 흔한 잡초이지만 색이나 모양이 아주 예쁘다. 뭐든 군락으로 피어 있으면 그 아름다움이 더해지는 것 같다. 초지라고 말하는 들판에는 아주 작아서 눈에 띄지 않지만 많은 식물들이 계절을 달리 하며 피고지고를 반복한다. 우리나라의 귀화식물인 ‘양장구채’꽃 또한 이 계절에 가장 많이 만나게 된다. ‘등심붓꽃’은 왜? 하는 반문을 하게 하는 이름을 가졌는데 손톱만한 꽃이 참 곱다.
아름다운 바다 풍광을 한층 더 빛내주는 초원에 작은 야생화들은 주인과 산책하던 강아지도 그냥 지나지 않고 코를 대고 킁킁거리게 한다.
바닷가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보이는 절벽아래 깎아 놓은 듯한 해안선 따라 드넓은 알뜨르 비행장은 일제강점기의 아픔이 남아 있어 바라보는 이의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세 개의 전망대를 지나 송악산 봉수대가 있었던 길에 들어서면 소나무 숲길이 기다리고 있다. 햇볕이 들어오지 못할 만큼 우거진 숲길은 솔잎으로 융단을 깔아 놓은 듯 운치 있어 마무리하기에 멋진 길이다.
짧은 길가에는 노란 ‘미나리아재비’와 소나무를 기둥삼아 피어있는 ‘염주괴불주머니’가 가는 길에 인사를 한다.
잦은 봄비에 맑은 하늘이 그리운 요즘이지만 보슬비를 맞으며 걸어도 좋고, 맑은 하늘에 둥실둥실 구름과 친구 삼아 푸른 바다와 멋진 능선을 굽이굽이 돌아 걷는 송악산 둘레길은 누구에게나 추천해주고 싶은 길이다.
또 하나 빠진 게 있다면 해안 절벽을 이루고 있는 화산석이 만들어 낸 기암의 모습들이 어떤 예술작품보다 멋지다는 것이다.
가파도와 마라도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지점에 두꺼비 형상을 하고 있는 바위를 미션으로 소개한다.
민족의 아픈 역사도 아름다운 풍광으로 승화 할 수 있는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송악산 둘레길은 제주도의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