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종료코너/안대찬세상만사

가족연대의 상징이며 부모들이 바라는 모범 형제

제주한라병원 2016. 4. 27. 09:51

역사 속 세상만사- 형제애의 표상, 디오스쿠로이 Ⅰ -
가족연대의 상징이며 부모들이 바라는 모범 형제


전국민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 속에 제 20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지난 13일 치러졌다. 이번 선거 결과의 특징적인 점이라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집권 여당이 국회 제1당을 내준 것(그러니 여소야대가 되는 것은 당연지사)과 지역주의 해체의 단초가 보였다는 점일 것이다. 현 집권여당의 전통적 강세지역이었던 강남에서조차도 이러한 변화는 맥락을 같이 했다. 거꾸로 현 야당의 전통적 강세지역이던 호남에서 여당 의원이 둘 당선되기도 했다. 국민들의 이러한 선택에 여당은 매우 당혹스럽겠고 야당은 절반의 안도를 하겠지만, 양쪽 모두 새겨야 할 것은 아전인수식 해석이 아닌 ‘민심이 천심’이라는 진리일 것이다.


아무튼 선거 결과를 요모조모 살펴보던 필자의 눈을 이끄는 익숙한 이름이 하나 있었다. 충남 서산-태안에서 당선된 성일종 후보. 어딘지 귀에 익은 이름이라 기사를 찾아보았다.


지금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흐려져 가고 있지만, 그는 바로 지난해 4월 9일 ‘불법 정치자금 리스트’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동생이었다. 당시 성 전 회장의 메모와 녹취에 등장했던 분들(이완구 전 국무총리, 홍준표 경남도지사,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 홍문종 의원,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 등)의 후일담은 논외로 하자.


19대 국회의원으로 형이 당선되었던 지역구에서 형이 세상을 등진 뒤 1년 만에 동생이 출마해 20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것이다. 성의종 후보는 당선 확정 후 “당선증을 받으면 가장 먼저 형님 묘소에 달려갈 겁니다”라고 말했다. 형의 억울한 죽음이 아직도 가슴 깊이 남아있다는 듯….


신화 속에서 가장 우애 깊은 형제를 꼽으라면 단연 ‘디오스쿠로이’다. ‘제우스의 젊은 아들들’이라는 의미를 지닌 디오스쿠로이는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 형제를 가리킨다. 이들은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뿐만 아니라 고대의 일반 민중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 중 이들만큼 문학이나 조형예술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이도 드물다.


지금도 로마의 카피톨리노 언덕에는 말과 함께 서있는 디오스쿠로이 동상을 볼 수 있고, 바로크 시대의 화가 루벤스는 <레우키포스의 딸들을 납치하는 디오스쿠로이>라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리스신화의 여러 영웅들처럼 이들도 뛰어난 기수이자 말 조련사였다. 그리스시대에는 전차와 말을 소유하고 이를 잘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 지배층을 이루고 있었다. 말을 사육하려면 당연히 넓은 초지가 필요했을 것이고, 그래서 이들은 또한 대토지 소유자이기도 했다. 고대 후기에 와서도 그리스의 오래된 귀족 가문에서는 말에 대해 잘 아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잘 알려진 유럽의 명품 ‘에르메스’의 로고에 말과 마차가 등장하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고전시대에 이들이 그토록 큰 사랑을 받은 것은 이 형제들이 신화시대 젊은 귀족 무사들의 삶을 다른 어떤 영웅들보다도 더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민주정 시대에 와서는 그러한 무사적 생활양식이 이미 흘러간 과거의 일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상류층 젊은이들은 여전히 그에 대해 낭만적인 동경을 느끼고 있었다. 이는 오늘날에도 적지 않은 청소년들이 중세의 기사가 되었으면 하고 꿈꾸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겠다.


실제로 디오스쿠로이들은 말이나 전차를 몰았다는 점에서 중세의 기사들과 비슷하다. 그래서 이들은 조각이나 그림에서 대개 말과 함께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신화시대의 영웅들이 몰던 전차는 고전시대에 와서는 이미 군사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는 물건이 되어버렸지만 그러나 여전히 전차 경주는 부유한 그리스인들의 자제들을 흥분시키는 스포츠였다.


또 디오스쿠로이들은, 신화시대의 귀족 가문에게는 소중한 가치였으나 고전시대에 와서는 이미 오래전에 그 정치적 의미가 약해진 ‘가족적 연대’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이들은 항상 붙어 다녔고, 누이 헬레나의 명예를 위해서 함께 싸웠다. 그들은 또 재미로 소떼들을 훔치는 무법자들이기도 했으며 목숨을 거는 일에 무엇보다 커다란 즐거움을 느끼는 거친 사나이들이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유복한 도시 어린이들이 꿈꾸는 영웅이었으며, 그들의 부모들이 바라는 형제애의 모범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