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권역외상센터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기고] 제주 권역외상센터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 것인가
미디어제주 | mediajeju@mediajeju.com 2016.03.23
<이민구 제주한라병원 중증외상센터장>
3세 남아가 아파트 3층 높이에서 떨어졌다. 119구급대를 통해 응급실로 도착할 것이라는 것을 인지한 응급의학전문의와 중증외상팀은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응급실 도착시 환자는 혈압이 잘 잡히지 않았으며 호흡이 매우 빠른 상태였다. 다행히 동공반사는 정상적이었으나 좌측대퇴골골절과 함께 심한 복부팽만이 보여 다량의 복부출혈이 의심되었다.
응급의학과는 기도삽관과 함께 소생술을 시행하였고 동시에 중증외상팀은 응급초음파를 시행하였다. 초음파상 심장 흉부에 이상소견은 없었으나 복강내 다량의 혈액이 관찰되었다,
중증외상팀은 추가적 CT 등의 검사시 환자의 불안정이 더 가중될 것이라고 판단해 바로 수술하기로 결정했다. 의료팀은 환자를 바로 수술방으로 이동시켰다. 집도할 외상전문의는 수술실에 대기하고 있었고, 환자가 도착하자마자 마취과와 함께 바로 수술을 시행하였다.
응급실 도착 후 수술 시작까지 정확히 28분 걸렸다. 소위 골든타임 1시간 내에 시행한 수술이었다. 수술 소견상 우측간의 심한 열상이 있었고 다량의 복강내 출혈이 있었다. 수술당시 환자상태로는 대량 간 절제술 시행이 어려운 상황이라 판단, 간 주위를 거즈로 일단 압박하는 손상통제수술을 시행하고 중환자실로 이동하였다.
중환자실에서 외상전문의는 24시간 환자를 관찰하였고 이후 환자는 어느 정도 안정화되어 추가적으로 CT를 촬영하고, 간에서 보이는 간동맥 출혈부위는 혈관조영술을 통해 지혈했다. 이후 환자는 더욱 안정화되어 다음날 손상된 우측간 절제수술을 문제없이 시행했다. 2차 수술후 3일째 일반병실로 이동하였고 추가적인 대퇴부 골절수술후 21일째 별 문제없이 퇴원할 수 있었다.
상기환자의 상황은 필자가 타 병원에서 권역외상센터장을 하면서 직접 맞닥뜨린 사례이다. 만약 다음과 같은 상황이 하나라도 이 환아에게 발생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보자.
△ 환자가 다른 중소병원에 먼저 방문하여 검사만 잔뜩하고 다시 권역외상센터에 방문했더라면?
△ 응급실 방문 시 전문외상팀 대기없이 인턴->레지던트-> 전문의 형식으로 진료해 즉각적인 수술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 중증외상팀의 전문성, 체계, 병원내 권위가 없어 수술 결정단계에서 우왕좌왕했더라면?
△ 수술결정 당시 수술실, 중환자실 사정 때문에 응급수술이 미뤄졌거나 마취과 의사의 적극적 협조가 없었더라면?
△ 수술당시 외상수술의 개념없이 무리하게 단번에 수술하려 했다면?
△ 중환자실관리가 경험없는 비전문가에게 이루어졌다면?
△ 이같은 환자가 다음에 발생했을 때 똑같은 시스템을 적용할 수 없다면?
위의 경우가 어느 하나라도 발생할 경우 그 환자에게는 바로 치명적이 될 수밖에 없다.
요약하면 병원 전 단계에서 적절한 환자분류와 중증도에 걸맞는 의료기관으로 신속한 이송, 병원단계에서 전문성을 가진 의료진의 신속하고 정확한 진료체계의 문제이다. 이는 기존의 우리나라에서 항상 문제로 제기되어 왔던 중증외상환자 진료시스템이었다. 이를 해결하고자 보건복지부에서 권역외상센터사업을 하고 있는데, 권역외상센터 선정이 유보된 제주권역에서는 상황이 더욱 더 심각하다.
최근 제주도내에서 권역외상센터 선정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나 일부 논의를 보면서 참으로 안타깝다. 지리적, 의료환경적 특수성으로 인해 어느 권역보다 먼저 권역외상센터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제주특별자치도는 공공성을 내세워 센터 유치를 유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또 한편에서는 적극적이고 실제적인 응급의료체계를 갖추지 않으면서 국립의료기관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권역외상센터를 유치해 공공성을 담보하겠다는 의료기관이 있다. 이로 인한 피해는 결국 도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전국 414개 응급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응급실 과밀화 및 대기시간, 시설·장비·인력 확보여부 등을 평가한 결과를 공개했다. 제주한라병원은 권역응급센터 중에서도 최상위기관으로 평가됐다. 아쉽게도 제주지역응급의료센터 4곳은 모두 중하위권으로 평가됐다. 또한 제주한라병원은 작년부터 기존 외상 진료체계에 권역외상센터 경력이 풍부한 의료진과 외상코디네이터를 추가적으로 영입하고, 권역외상센터 선정과 별도로 선제적으로 외상환자를 전담하는 중증외상센터를 발족, 운영하고 있다
권역외상센터의 선정은 선언적 혹은 정치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중증외상환자의 치료는 실제적인 것이며, 준비돼 있어야 하고,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또 지속적이어야 하며, 외상시스템의 특수성을 이해하여야 한다. 이를 담아내지 못하는 병원은 권역외상센터를 유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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