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정보/질병포커스

정맥‧인조혈관 이용한 혈관 우회로술로 다리 살려내

제주한라병원 2016. 3. 3. 13:21

정맥‧인조혈관 이용한 혈관 우회로술로 다리 살려내
말초혈관질환②


근현대화가 우리몸의 대사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생각해보자. 원시시절, 조상들은 수렵이나 채취를 통해 에너지원을 섭취했다. 먹을 것이 항상 부족했기 때문에, 우리의 몸 속에는 당장 사용할 에너지원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저장해 버리려는 경향이 뚜렷했고 이를 위한 대사과정이 언제나 활성화 되어 있다. 이는 모든 동물들에게서 공통적인 현상이고 거의 예외없이 지방이라는 효율 좋은 저장형태로 몸 곳곳에 비축한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물질문명의 발달과 생산의 증가는 인간에게 먹고 살기위해 들판을 뛰어다닐 필요성을 순식간에 줄여버렸다. 과거보다 훨씬 수월하게, 더 맛있는 것을 더 배불리 먹게 된 인류. 하지만 불행히도 수억년의 진화를 통해서 만들어진 인간의 저장 본능의 시스템을 불과 수백년동안에 변화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남는 에너지원들 (당, 단백질, 지방)의 처리를 위해 간과 콩팥, 췌장 등이 이전에 없던 혹사를 당하고, 무조건적으로 저장하려는 진화적으로 고착된 원리에 의해 피하에, 간에, 심장과 혈관에 지방과 대사 과정의 노폐물이 침착된다. 아시다시피 이로 인하여 현대인류는 성인병이라는 새로운 질병에 고통받게 되었다. 우리 몸 구석구석 혈관이 없는 곳은 없기에, 동맥경화라 부르는 혈관내 죽상경화반은 암과 더불어 현대인의 주요 사망원인인 뇌경색, 심근경색 및 협심증 말초혈관 폐색증의 직접적 원인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우리 몸은 셀 수 없는 시간동안 쌓인 진화에 의한 생리적 특징을 가진다. 세포는 주기적으로 삶과 죽음을 반복하면서 재생산된다. 이 과정을 잘 도와주면 되는 것이다.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오염되지 않은 음식을 먹고, 몸속의 어떤 생리적 과정이 과도하게 일어나거나 차단되는 것을 방지하면 된다. 이를테면 과식을 하지 않음으로써 혈중 콜레스테롤 레벨이나 당뇨를 조절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부분이 의학에서 기본적이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예방의학이다. 질병이 발생하기 전에 막아보려는 노력이 그것이다. 최근 신문을 통해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여자의 경우 무려 85세를 넘어섰다는 결과가 발표되었다. 여러 가지 분석이 있겠지만 필자는 지난 이십여년 동안 꾸준하게 발전해온 국가적인 건강검진, 관리 사업, 국민생활습관 개선의 긍정적 결과에 특히 초점을 맞추고 싶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러한 예방의학만으로 질병의 발생율을 줄이지는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고기를 적게 먹거나 다이어트를 하면 혈중 콜레스테롤을 정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다. 물론 대사량이 활발한 젊은이들은 어느 정도 과식을 하더라도 혈중지방이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년이후로 넘어가면 기초대사량 자체가 떨어지기 때문에 이야기가 달라진다. 중년이후에는 식이요법을 통하여 조절가능한 지질 수치가 전체의 30%를 넘지 못한다. 즉, 70%의 콜레스테롤은 약의 도움 없이는 조절이 불가능하다. 우리 몸의 유전자가 그렇게 되어있는 것이다. 이것은 대표적인 성인병인 고혈압, 당뇨 등에서도 조절기전에서 모두 유사하다. 그리고 이러한 성인병은 악화되면서 몸을 이루는 세포와 기관의 기능을 서서히 망치면서 죽여간다.


우리의 몸이 유전적, 생리적으로 그렇게 되어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정기적인 검진과 생활습관의 개선도 중요하지만, 질병이 발견되었을 때, 약물 혹은 기타의 치료를 통하여 더 무서운 질병으로의 악화를 막고 질병의 진행을 느리게 할 목적으로 치료의학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성인병이라 불리우는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은 인간이 노화됨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율이 증가하고 장기기능의 악화를 가져온다. 이를테면 오래된 당뇨로 인해 눈에 보이지조차 않는 미세한 혈관들이 좁아지고 이로 인해 다리가 썩는…그래서 성인병을 소리없는 암살자라 부르는 것이다.


내가 처음 응급실에서 L씨를 본 것은 그가 고통에 겨워 마약성 진통제를 한움큼 삼키고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때였다. 걸을 수 없게 된 환자의 다리상태를 본 응급의학과 선생이 기겁을 해서는 심장과 말초혈관 전공인 필자에게 부랴부랴 연락을 한 것이다. 저간의 사정을 부인으로부터 듣고는 말못할 측은함이 밀려왔다. 우리시대의 평범한 얼굴을 한, 무거운 어깨를 늘어뜨린 한 가장의 모습을 보고 나는 어떻게 하면 그의 다리를 예전처럼 돌릴 수 있을까 고민하였다. 필자는 오랜 당뇨로 쪼그라든 동맥혈관에 환자의 정맥을 이용해서 혈액을 재공급할 수 있는 우회술을 해보기로 하고 그와 상의하였다. 성공했을 때는 다리를 살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어쩌면 발목뿐만 아니라 무릎까지도 절단을 감수해야 할 처지였다. 더군다나 기술적으로는 자신이 있다해도 이미 망가져버릴대로 망가진 그의 혈관구조가 수술을 견딜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불안해하였다. 서울의 S 병원에서도 그 때문에 다리를 살리기를 포기하고 절단을 권유했던 터였으니…. 하지만 나는 그 한사람 뒤에 있는 그의 가족들을 보면서 우리의 혈관 우회로수술이 잘 될 수 있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최고의 컨디션으로 환자의 반대쪽 정맥과 인조혈관을 모두 이용하여 환자의 장골동맥에서 발등동맥으로 우회술을 진행하였다.


수술 후 첫 한달동안은 환자가 더 아파했다. 원하던 타겟혈관에 정확히 붙였기 때문에 죽어가던 신경이 재생되고, 새살이 돋으면서 생장통이 생겼던 것이다. 그로부터 6개월을 더 환자에게 달라붙었다. 음압치료와 함께 필요시 줄기세포 치료까지 고려하였다. 6개월 후 환자는 휠체어에서 일어나 절뚝거리면서 걸을 수 있었다. 그리고 1년 후 환자는 건강한 모습으로 두 다리로 걸어 외래로 가족과 함께 찾아왔다. 그는 이제 다시 걷고, 취직을 했으며 열심히 당뇨를 조절하고 있다.


종족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 개개인은 언젠가는 죽는다. 하지만 다른 생명체와 달리, 우리 인간은 사유하고, 느끼며, 교감하는 형이상학적 특별함을 지닌다.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형이상학적 특별함의 한 형태이다. 그리고 그 행복은 육체의 건강이 허락할 때 비로소 기본을 만들 수 있다. 나는 우리들이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것을 알고 있다. 그때까지는 건강한 삶을 위한노력을 할 것이다. 그것이 가족과 주위사람을 위한 최소한의 도리니까. 그리고 나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니까. <이길수‧흉부외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