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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질 향상 위해 재활의학에 국가 대폭 지원 절실

제주한라병원 2015. 10. 1. 09:12

삶의 질 향상 위해 재활의학에 국가 대폭 지원 절실

31년 전 로스에인절스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 취재를 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제가 4개월간 입원했던 란초로스 아미고스 병원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재활병원이었습니다. 본래 이 병원은 정형외과 병원으로 운영하다가 재활을 위해 신경외과, 비뇨기과, 정신과, 재활 트레이닝, 재활 보조 장비, 사회복지사 등 각종 분야가 참여하여 협력하는 재활 종합병원이 됐습니다. 병원 규모는 LA 인근에 커다란 공원에 자리잡고 800명 가량의 환자를 수용할 수 있었으며 정부가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간호사, 간호조무사, 자원봉사자 등이 환자를 돌봐주고 환자 가족들은 잠깐씩 면회를 왔다가 돌아가도록 규칙이 돼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말에는 환자가 1박2일이나 2박3일 정도 집으로 돌아가 일상생활에 적응하는 훈련을 하도록 했습니다.


척수손상을 입어 휠체어를 타야 하는 저는 처음에는 암담했으나 정신과 상담, 휠체어를 타는 요령, 휠체어를 타서 불편해진 생활에 적응하는 각종 방식, 거리나 백화점 등지에 나가 일상생활에 적응하는 기회를 재활 트레이너와 함께 몇 차례 경험하면서 차츰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됐습니다.


사고가 난지 5개월 여 만에 한국에 돌아와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1개월간 입원해 한국생활에 적응한 저는 6개월여만에 한국일보사에 복귀해 업무를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동료들과 예전과 같이 생활하면서 달라진 생활에 적응하고 차츰 여러 사람들과 만나며 일상생활에 적응하게 됐습니다.


척수손상을 입는 바람에 가기 어려운 장소가 많아지고, 배변이 전과 달라지고 통증이 수시로 찾아와 힘들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처지로 받아들이며 어느덧 31년이 지났습니다. 저 때문에 가장 고생하는 사람은 물론 아내와 아들, 딸 등 가족들입니다. 아내는 저를 수발하느라 몸에 무리가 와 허리와 무릎 수술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만큼 일상생활에 적응하며 사회생활을 할 수 있던 것은 맨 처음에 입원했던 LA 란초병원이 재활치료를 하면서 제대로 가르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가장 많은 재활치료를 담당한 사람은 물리치료사 존이었습니다. 30대 중반의 그는 하루에 3시간 가량 제 옆에 있으면서 여러가지 운동을 가르치고 일상생활에 적응하는 방식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봉급은 의사들보다 많아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란초병원을 떠나 개업을 하던지 일반 재활병원에 가면 더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미국에선 물리치료사들이 상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재활의학이 처음으로 시작한 것은 1952년 세스란스병원 내 물리치료실이 설립됐고 1958년에 세브란스에서 최초로 재활의학 강의가 시작됐으며 1959년에 소아재활원과 63년에 절단자재활원이 세브란스에 개원했습니다. 그리고 1983년에 세브란스에 재활의학교실이 신설되고 병원에도 재활의학과가 간판을 달았습니다. 이어서 다른 대학병원에서도 재활의학과가 신설되고 정형외과와 별도로 생기기 시작해 재활의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현재 한국의 재활의학은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됐습니다. 그러나 다치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맞추어 삶의 질을 향상하려면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2010년 10월 22일 국회에서 정하균 의원은 보건복지부 종합감사에서 “우리나라가 줄기세포를 포함한 재생의학산업 분야에서 선두주자로 성장하려면, 국가차원에서 체계적인 연구개발 전략을 수립하고, 과감한 연구비 지원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지적했습니다.  


정 의원은 “최근 재생의학과 관련해 세계적 수준의 연구 성과가 배출되고 있어 바이오의료기술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며 “반면 국내 재생의학 관련 연구 환경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열악한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일본은 우리보다 5배 이상, 미국은 30배 이상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에서는 줄기세포 연구에 한해 약 450억원을 투자하고 있다”며 “우리나라가 줄기세포를 포함한 재생의학산업 분야에서 선두 주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국가차원에서 체계적인 연구개발 전략을 수립하고 과감한 연구비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현장과 학계에서도 가정과 일터로 복귀해야 하는 환자들이 효율적인 재활치료를 통해 기능을 회복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부담도 줄일 수 있으므로 정부의 대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대한뇌신경재활학회는 지난 9월 2일 ‘제1회 아시아-오세아니아 신경재활학회 학술대회(AOCNR2015)’ 개최에 앞서 기자간담회를 가졌습니다. 뇌신경재활학회 김연희 회장(삼성서울병원 재활의학과)은 “삶의 질이 중요해지는 시대적인 요구에 따라 신경재활 분야도 주목 받고 있다”며 “특히 초기 집중적인 재활치료를 통해 장애 정도나 빈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김 회장은 “하지만 재활수가가 외국에 비해 턱 없이 낮은 수준이다. 물리치료의 경우 인건비가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인건비는 중요하지 않은 요소”라며 “그렇다보니 물리치료사의 수가가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습니다.


재활치료가 중요한 이유는 환자가 일상으로 복귀하는 기간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교통사고나 뇌졸중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은 보행훈련을 제대로 받으면 복귀를 앞당길 수 있습니다.


병원들이 재활치료 수가가 낮다는 이유로 치료를 기피하는 게 현실입니다.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물리치료를 처방하면 물리치료사가 30~40분동안 보행 훈련을 하지만, 이 때 병원이 받는 진료비는 약 1만 5000원에 그칩니다.


그는 “우리나라는 급성기 치료에는 투자를 하지만 삶의 질적인 부분과 연관된 분야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면서 “국내 재활의학 분야에 대한 세계적인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인식도 높아지고 재활치료가 대중화 되는 시점도 온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 학회의 백남종 조직위원장(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은 “학문적으로 뇌신경재활 분야는 한국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앞서가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학회에는 30개국 450여명의 재활의학 분야 세계 석학들이 참석한 가운데 9월 3일부터 5일까지 사흘간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개최됐습니다.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의 재생의학산업 육성 약속에 따라 2008년부터 매년 미국에서 최대 규모의 줄기세포 재생의학 학술회의를 개최, 줄기세포 치료제의 임상 및 판매 전략 등을 발표합니다.


재생의학 분야는 앞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할 것이 확실해 국가 수익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재생의학 발전을 통해 장애를 입은 환자들의 삶이 나아지면 사회적인 비용도 줄어들므로 정부가 지원에 나서야 할 분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