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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호 김경문 최진철 양용은 제주를 빛낸 프로스포츠맨

제주한라병원 2015. 4. 29. 10:25

강민호 김경문 최진철 양용은 제주를 빛낸 프로스포츠맨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가 열리는 날은 사직구장 뿐아니라 전국 어디를 가나 롯데팬들은 팀의 포수 강민호가 등장하면 보니 엠의 ‘바빌론 강가에서(Rivers of Babylon)’에서 본딴 ‘롯데의 강민호~롯데의 강민호~오 오~오 오~’라는 상징 응원가(로고송)을 부르며 흥겨워합니다. 야구장에서 강민호의 이 응원가는 가장 인기 있고 누구나 귀에 익은 노래가 됐습니다.


지난 1월 22일 야구계에 눈길 끄는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롯데의 강민호(30)와 SBS TV 신소연(28) 기상캐스터가 연인 관계라는 소식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지난 2012년 8월 3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삼성-롯데전에서 신소연 캐스터가 시구자로 나서면서 친분을 쌓았고 이후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했습니다. 본격적인 만남이 시작된 건 2013년 신소연 캐스터가 롯데의 서울 원정경기가 열리면 야구장에서 연인을 응원하고 공개 데이트도 여러차례 가졌습니다.


강민호는 제주시 연동 태생으로 신광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도내에 중학 야구팀이 없어 포항으로 가서 포철중학-포철공고를 거쳐 2004년에 롯데에 입단했습니다. 입단 다음 해인 2005년 만 20세에 팀의 안방을 맡아 프로야구 사상 최연소 주전 포수가 됐습니다. 그리고 2006년에는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돼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등 대표팀 주전 포수로 활약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이 남자 구기 종목 사상, 야구 최초로 올림픽 우승을 차지해 제주도 태생 선수로는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하는 영광도 안았습니다. 매년 최고 포수에게 시상하는 골든글러브도 3회(2008년•2011년•2012년) 수상하는 등 포수로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2013년 프로 시즌을 마친 후에는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팀을 옮길 수 있었지만 롯데 구단과 협상 끝에 4년간 총액 75억원(계약금 35억원•연봉 10억원)의 계약을 체결해 당시로서는 프로야구 선수 최대 액수의 대박을 터트렸습니다.


그런데 강민호는 프로 개인 성적이 2013년에 약간 저조했고 2014년에는 극히 부진해 야구팬들로부터 ‘배가 불러지니까 게을러졌다’ ‘먹튀’라는 말을 들어 마음 고생이 심했습니다. 본인 자신도 “먹튀라는 말을 듣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이고 “2015년에는 반드시 재기해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올해 프로야구 시즌은 3월 28일 개막됐는데 강민호는 지난 4월 5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경기에서 0-3으로 뒤진 2회말 무사 1루 첫 타석에서 동료이자 친구였다가 올해 두산으로 옮긴 장원준을 상대로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투런홈런을 날렸습니다. 그리고 또 7회말 투런포에 이어 8회말 무사 만루에서는 자신의 통산 여섯 번째 만루홈런을 때렸습니다. 5타수 4안타(3홈런) 8타점 3득점의 괴력을 과시해 팀이 16-4로 대승하는데 기여했습니다. 강민호가 올해는 지난 해와 달리 좋아진 모습을 보이며 강타자로서 명예를 되찾을 것으로 보입니다.


강민호는 올 시즌을 앞두고 공격적인 야구를 하겠다면서 작년의 소극적인 타격은 범타를 양산했고 자신감 저하로 이어졌다 고 말합니다. 지난 해 성적은 홈런을 16개 기록했지만 타율은 2할2푼9리, 득점권 타율은 1할6푼9리로 저조했습니다. 올해는 4월 13일 현재 타율 2할9푼4리 4홈런 9타점으로 상당히 좋아졌고 롯데 팀 성적도 7승5패로 4위에 올라 지난 해의 7위에 비하면 향상됐습니다. ‘롯데의 강민호~ ~’라는 상징노래가 팬들에게 친숙하게 여겨지길 바랍니다.


프로 스포츠에서 제주 출신 유명 스타는 강민호 외에도 많습니다.


프로 골프에서 양용은(43. KB금융그룹)은 제주 신도초-무릉중-제주 관광고를 나와 1996년 프로에 입문했습니다. 그는 프로에 발을 딛은 지 10년만인 2006년 11월에 유럽 프로골프투어 HSBC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 2009년 8월 17일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프로골프(PGA)에서 가장 권위있는 챔피언십 대회에서 정상에 올라 세계 골프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프로축구에서는 최진철(44)이 얼마 전까지 최고의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전남 진도 태생이지만 어릴 때 제주로 온 그는 제주서초-제주중앙중-오현고등학교를 나와 프로팀 전북 현대에 1996년에 입단해 2007년 선수 유니폼을 벗을 때까지 센터백 수비수로 활약했습니다. 현재는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이며 U-17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프로씨름과 격투기계의 몸무게 140kg, 키 217cm의 최홍만(35)이 유명합니다. 한림중 3학년때부터 씨름을 시작한 최홍만은 2002년 12월 LG 투자증권 황소씨름단에 입단해 다음 해 2003년 12월 제14대 천하장사 타이틀을 따내고 씨름계를 석권했습니다. 그는 2015년에 이종격투기 K-1에 진출해 월드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하며 이종격투기계에서 2009년까지 이름을 날렸습니다. 현재는 프로모션 업체를 제대로 만나지 못해 활발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프로야구에서는 강민호 이전에 오봉옥(47)이 유명했습니다. 서귀포 태흥초-남원중-포항공고-영남대 중퇴 경력의 그는 1992년에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습니다. 입단 첫 해 김성근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13승무패로 승률왕에 올라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쌍방울-해태-KIA-한화를 거친 그는 2005년에 은퇴 후 제주 제일중학 야구감독을 지내고 있습니다.


제주와 인연이 깊은 야구인 중에서는 김경문(57) NC 다이노스 감독이 유명합니다. 김경문 감독은 두산 베어스 사령탑 시절인 2004년부터 겨울에는 선수단과 함께 서귀포로 내려와 전지훈련을 벌였습니다. 대표팀 감독을 맡은 2008년에도 전지훈련을 펼치려다 제주에 물난리가 나는 바람에 취소하기도 했는데 그 해 베이징 올림픽에서 9전전승으로 야구팀을 한국 스포츠 사상 올림픽에서 남자 구기 종목으로는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하게 만들었습니다. 서귀포시 훈련장에서 팀을 이끌고 자주 훈련을 한 김경문 감독에게 서귀포시는 2009년 12월 서귀포시 명예 홍보대사로 임명했습니다.


제주한라병원은 2008년 12월 3일 김경문 두산 감독을 스포츠 의료관광 명예대사로 위촉했습니다. 그 이전부터 김경문 감독이 한라병원을 방문해 소아 환자를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베이징 올림픽 우승을 기념해 명예대사로 위촉한 것입니다.


제주한라병원은 제주의 신성장산업인 의료관광과 스포츠를 접목시켜 의료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김 감독을 명예대사로 위촉하고 스포츠와 연계한 새로운 의료관광을 추진하게 됐습니다.


김경문 감독은 2013년에 프로야구 9구단인 신생팀 NC 다이노스의 사령탑을 맡아 첫 해  7위에 차지하고 2014년에는 신생팀 사상 처음으로 4강에 진출하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신생팀을 위한 외국인 선수 보유가 3명에서 기존팀처럼 2명으로 줄어들자 전문가들은 NC가 하위권으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현재 4위를 차지하며 강한 모습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주와 인연이 깊은 프로스포츠인들이 스포츠계를 빛내는 사례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