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하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도시
운하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도시
벨기에 브뤼헤
중세시대의 고색창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브뤼헤는 세계문화유산의 도시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 세계적인 ‘운하의 도시’라면 여기에 필적할 만한 도시가 또 하나 있는데, 그곳은 벨기에 브뤼헤(Brugge)이다. 플랑드르어로 ‘브르흐’, 프랑스어로 ‘브르주’라고 불리는 브뤼헤는 플랑드르 지방의 옛 수도였으며, 1559년 이후로 대주교 관할권에 속하게 되었다. 이곳은 암스테르담보다 화려하거나 세련되지 않았지만 도시의 이미지가 지구별 사람들의 마음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를 연상케 하는 물의 도시 브뤼헤는 크고 작은 항구가 운하로 연결되면서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린 도시다.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운하를 따라 조용하게 걷는 산책은 이 도시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여행의 진면목이다. 번잡스런 도시보다 삶의 여유와 내면적 자아를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일생에 한 번은 꼭 브뤼헤를 방문해야 한다. 시민의 소박한 마음씨를 닮은 도시의 이미지는 여느 유럽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그런 풍경은 아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운하와 강을 따라 아름다운 중세 건축물들이 한 편의 동화를 떠올리게 한다. 세월에 의해 남루해진 도시의 건축마다 시민들의 따스한 사랑과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 있어, 이곳을 처음 찾는 이방인들에게 고색창연한 기품을 선사한다. 우우죽순처럼 높이 솟아 오른 고층빌딩대신 뾰족한 교회 종탑, 형형색색의 집, 낭만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박석 길 등 이런 모든 중세의 요소들이 서로 어우러져 도시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킬 만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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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긋불긋한 지붕이 인상적인 브뤼헤의 도시 전경은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 시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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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헤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마르크트 광장은 언제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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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112m의 성모 교회 첨탑에서 내려 다 본 브뤼헤의 전경 |
중세시대 때 건축된 구시가지가 그대로 보존된 브뤼헤는 아직도 여행자들의 꿈으로 남아있으며, 일 년에 평균 2백만 이상의 관광객들이 이 작은 마을을 찾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한껏 치르고 있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꼬리표가 없더라도 브뤼헤에 첫 발을 디디는 순간 우리 모두 이곳의 소박한 매력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유서 깊은 중세의 이미지와 달리 이곳의 초기 역사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7세기 문헌에 ‘무니시피움 브루겐즈’라는 언급이 있기는 하나, ‘브뤼헤’라는 이름은 라이 강 입구에 배를 정박시켰던 바이킹족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바이킹족어로 ‘정박지’를 뜻하는 ‘브루기아나’에서 도시의 이름을 유추할 수 있지만 문헌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다. 다만 강력한 플랑드르 왕조의 창시자이자 프랑스 대머리 왕, 샤를르의 사위인 보두앵 1세가 이곳에 성을 지었고 도시를 건설했다는 사실 만큼은 확실하다. 보두앵 1세가 도시의 면모를 갖춘 후 브뤼헤는 즈빈 강을 통해 북해와 연결해 12세기와 13세기를 거치면서 중세의 주요 무역도시로 번성했다. 이탈리아와 동양에서는 직물을,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생선을, 러시아에서는 모피를, 아라비아에서는 향신료 등을 교역하며 발전하였다. 전성기를 누렸을 당시에 이곳에는 17개 나라를 대표하는 은행과 통상 사무소 건물이 세워지면서 그야말로 중간해상무역도시로 번영을 누렸다.
14세기에 이르자 도시는 부흥의 정점에 도달했다. 당시 브뤼헤가 얼마나 부유했는지는 공정왕 필립의 아내 조안나 드 나바레의 이야기에서 추측해 볼 수 있다. 1301년 브뤼헤에 도착한 그녀는 중산층에 불과한 아낙네들의 고급스러운 옷차림과 호화로운 장신구들을 보더니 위엄을 잃고 큰 소리로 “내가 유일한 여왕인 줄 알았건만, 수백 명의 여왕들에게 둘러싸이게 되다니.”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1500년 이후 도시의 부유한 상인들이 점차 브뤼헤를 버리고 안트베르펜으로 떠나기 시작했고, 16세기 후반에 종교적 갈등이 거세어지면서 브뤼헤의 번영기는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 19세기까지 브뤼헤는 조르주 로텐바흐가 그의 소설 ‘죽은 브뤼헤’에서 묘사한 것과 같이 깊은 침체기를 겪었다. 그러나 1907년 부드윈 운하의 건설과 함께 바다로 가는 길이 다시 열렸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운하 주변에 산업 단지가 다시 조성되기에 이르렀다. 후에 의욕적인 재건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도심의 많은 부분이 옛 시절의 화려함을 되찾기 시작했다.
중앙역에서 도보로 20여 분 걸어가면 전설적인 도시, 브뤼헤의 단아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벨기에에서 가장 높은 112m의 성모 교회 첨탑은 브뤼헤의 상징이자 도시 여행의 랜드 마크가 된다. 무엇보다 성모 교회 안에는 값진 예술품들이 보관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인‘성모자상’(1503-04)이 특히 눈길을 끈다. 남쪽 회랑 끝에 세워진 이 조각상은 브뤼헤의 상인 얀 모스크로엔이 1521년 미켈란젤로로부터 직접 선물 받은 것이라고 한다. 성모 교회를 등지고 이 도시의 중심인 마그리트 광장으로 가면 중세시대 때 건축된 크고 작은 상가 건물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광장 주변으로 수많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다. 투박한 박석 위를 달리는 마차를 보는 순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 시대로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이외에도 도시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종탑을 비롯해 다양한 것들이 있지만, 브뤼헤 여행의 백미는 보트를 타고 거미줄처럼 얽힌 운하를 여행하는 것이다. 구절양장의 운하를 달리다보면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중세의 건물과 아름다운 자연이 눈 속을 사정없이 파고든다. 대충 운하로 도시를 한 바퀴 돌고 난 다음 천천히 도시를 걸으면 삶의 여유를 느껴보면 브뤼헤가 가진 소박함에 새삼 놀라게 된다.
◀ 소박하고 꾸밈없는 브뤼헤 구시가지의 골목길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