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레네스의 노래, 현실 잊고 죽음의 길로 유혹
역사 속 세상만사- 사이렌의 기원 -
세이레네스의 노래, 현실 잊고 죽음의 길로 유혹
지난해 말 러시아 서베링해에서 원양어선 침몰 사고가 있었다. 한국 시각으로 2014년 12월 1일 오후 2시경 사조산업 소속 오룡호가 좌초되어 침몰한 사건이었다. 침몰 당시 오룡호에는 한국인 11명, 인도네시아인 35명, 필리핀인 13명, 러시아 감독관 1명 등 총 60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전체 승선 인원가운데 7명이 구조됐지만 한국인 6명 등 27명이 숨졌고, 한국인 5명 등 26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해상에서 발생하는 선박사고에 대한 우려는 예나 지금이나 선원들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과 이해관계자들에게 커다란 두려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신화 속에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경보음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사이렌(siren)’에 관한 것이다.
사이렌(siren)은 ‘세이레네스’의 영어식 표기다. 배의 신호음이나 경계 경보음을 내는 장치에 사이렌이라는 이름을 붙인 기술자들은 아마도 음악에는 문외한이었을 수 있지만 적어도 사이렌, 즉 세이레네스가 선박 또는 음악과 관련이 있다는 정도는 알았던 듯하다.
세이레네스들은 이탈리아 해안의 한 섬에 살던 날개달린 여인들 혹은 여자의 머리를 한 새들을 가리켰다. 처음에는 두세 명의 노래하는 여인들이라고 알려졌으나, 후에 관악기와 현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여기에 덧붙여졌다. 세이레네스들과 비교할만한 대상은 무사이 여신들 정도일 텐데 한때 세이레네스들은 무사이 여신들에게 음악 경연 도전장을 냈다. 하지만 무참히 패배하였고, 그 오만함에 대한 벌로 무사이 여신들은 이들의 화려한 깃털을 모두 뽑아 화관을 만들었다.
오직 신을 위해서만 노래하는 무사이 여신과는 달리 세이레네스는 인간에게 치명적이며 유혹적인 음악을 들려준다. 배가 그 섬 근처에 다가가 뱃사람들이 세이레네스들의 노래를 듣게 되면 이들은 모두 배를 버리고 간절한 동경에 사로잡혀 해안으로 헤엄쳐 가서는 그 헐벗은 섬에서 비참하게 굶어 죽고 만다. 그 섬은 가엾은 뱃사람들의 창백한 유골들로 뒤덮여 있었다.
한 척의 배라도 그 섬을 무사히 지나가는데 성공하면 세이레네스들은 모두 바다에 뛰어들어 죽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얘기는 분명히 잘못된 것 같다. 적어도 두 척의 배가 그 섬을 지나가는데 성공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 배는 이아손과 메데이아의 지휘 하에 황금 양모를 싣고 그리스로 돌아가던 아르고 호였다. 멀리서 세이레네스들의 노래가 들려오고 배에 탄 사람들이 불안해하기 시작하자 배에 함께 타고 있던 가수 오르페우스가 목청껏 노래를 불러 세이레네스들의 노랫소리를 눌러 버렸다. 아르고 호의 선원들은 가죽끈으로 몸을 묶고 그 위험한 섬을 무사히 빠져나갔다. 이들 중 단 한 사람 부테스만이 배에서 뛰어내려 그 헐벗은 섬으로 헤엄쳐 갔다. 그는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에 대한 사랑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간절한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세이레네스들의 노래에 특별히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여신은 그를 시칠리아 부근의 또 다른 황폐한 섬으로 데려가 그와의 사이에 아들을 낳았다.
세이레네스들의 섬을 무사히 빠져나간 또 한 척의 배는 오디세우스 일행의 배였다. 세이레네스들의 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던 키르케가 이 영웅에게 그 위험성을 미리 알려주어 이들은 모든 필요한 예방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촛농으로 귀마개를 만들어 선원들의 귀를 막게 하였고, 자신은 안전하게 그 노래를 듣기 위해 배의 돛대에 몸을 꽁꽁 묶었다. 그 위험한 음악을 직접 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배가 섬에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세이레네스들의 노래가 파도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좀 더 가까이 다가오면 아직 아무도 듣지 못한 것을 듣게 해주고,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해주겠다고 유혹하는 세이레네스들의 노래가 들려왔다. 그러자 오디세우스는 일행들에게 간청하고 애원하고 명령하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자신을 풀어달라고 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들은 미리 약속해두었던 대로 오히려 그의 몸을 더욱 세게 동여맸다. 이렇게 하여 오디세우스 일행은 세이레네스들의 섬을 무사히 통과하게 된다. 오디세우스의 명료한 현실 감각이 음악의 낭만적 위험성을 이긴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순간만은 그는 자신의 삶을 음악에 희생할 뻔한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선원들은 바다나 해안에 잠복해 있는 무서운 위험들에 관해 즐겨 이야기 한다. 라인 강의 절벽 위에 앉아 노래로 뱃사공들을 홀리게 하여 지나가는 배들을 난파시키는 금발의 요정 로렐라이는 근대의 세이레네스라고 할 수 있다. 하인리히 하이네가 작사한 낭만적인 가곡은 로렐라이의 달콤한 유혹 뒤에 숨겨진 무서운 위험을 노래하고 있다.
세이레네스의 노래만큼 인간에게 유혹적이지만 치명적인 것도 드물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유혹하여 현실을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세이레네스의 노래가 인간들을 사로잡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미래에 대해 속삭여주기 때문이라고 신화는 전한다. 음악의 힘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음악은 현실을 잊게도 하고, 시공간이 사라져버리는 비밀스런 세계로 우리를 끌어들이며, 미지의 그 어떤 것에 대한 무모한 동경을 일깨우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