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매거진/이태훈세계여행

바람도, 구름도, 시간도 잠시 쉬어가다

제주한라병원 2014. 12. 30. 10:35

바람도, 구름도, 시간도 잠시 쉬어가다

중국 후난성 봉황고성

 

 

청나라 시대의 고풍스런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봉황고성

중국 후난성에 자리한 봉황고성은 묘족과 토가족의 소수민족이 오롯이 자신의 고유한 전통을 지키며 살아온 삶의 터전이다. 천년 고도의 봉황고성은 안휘성, 절강성, 여강 고성과 함께 중국 4대 고성으로 꼽히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문명의 이기가 아직 스며들지 않은 이곳에는 청나라의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 여행자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타강과 강을 이어주는 홍교 그리고 강을 따라 들어선 오래된 수상가옥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토가족과 삶의 궤적을 함께 한 타 강(江)은 봉황고성을 한가운데로 가로지른다. 

우리의 기왓장과 달리 작은 기와로 지붕을 덮은 고택의 고즈넉한 풍경 

화려한 장신구와 검은 두건을 크게 머리에 두른 토가족의 여인들 


장자지에(張家界)에서 차로 4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봉황고성은 험한 산과 계곡을 지나야만 만날 수 있는 오지 중에 오지다. 외부세계와 철저하게 단절되었던 봉황은 60여 년 전 이곳 출신의 문학가이며 역사학자인 심종문의 소설 ‘변경도시’를 통해 소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아주 이색적인 바둑대결로 이 도시의 이미지가 알려져 있다. 지난 2003년 ‘남방장성 한중초청 무림대결’에서 조훈현 9단과 창하오 9단이 세계 최대의 바둑판을 앞에 두고 멋진 승부를 펼쳤다. 이날 대회의 바둑판은 남방장성의 안마당 3백 평에 160여 톤의 돌을 들여 만들었고, 바둑알은 361명의 소림 무술제자들이 흰옷과 검은 옷을 입고 바둑돌로 참가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누각에서 조훈현 9단과 창하오 9단이 바둑을 두면 소림 무술제자들이 잽싸게 놓은 자리로 이동해 2만 여명의 관중들을 즐겁게 했다. 세계 미증유 같은 대국이 바로 봉황고성에 펼쳐지면서 이곳은 중국 오지여행지로 발돋움하게 됐다.

 

 

한 폭의 그림이 한 편의 서정시를 노래하게 한다.

소수민족 묘족과 토가족이 타강을 중심으로 4000여 년간 살아온 봉황고성은 중국 속에 또 다른 이미지를 선사한다. 예로부터 봉황고성은 산수가 수려하고, 사람들의 마음이 따뜻해 바람도 구름도 잠시 쉬었다가는 아주 소박한 농촌마을이었다. 도시인들에게 아주 낯선 봉황고성은 춘추전국시대 때는 초나라 땅이었고, 당나라 시대 때는 웨이양(渭陽)현으로 불리다 청나라에 이르러 ‘봉황’이란 지명을 얻었다.

 

 

우리에게는 좀 낯선 여행지이지만 서양인들에게는 아주 인기 있는 여행지로 급부상한 봉황고성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은 봉황고성은 장자지에에서 구절양장의 도로를 따라 4시간 남짓 달려야 만날 수 있는 곳이지만, 수천 년 동안 때 묻지 않은 자연이 눈앞에 펼쳐져 마치 선계를 연상케 한다. 청나라 강희(康熙) 39년에 지어져 300여 년이 넘는 봉황고성은 보존 상태가 완벽하다. 타강을 따라 난 긴 성곽을 따라 북문인 벽휘문을 지나면 이곳 사람들의 삶의 전부이자 봉황의 젖줄인 타강이 눈앞에 펼쳐진다.

 

 
타강을 중심으로 강 양쪽에는 긴 작대기를 받쳐 만든 수상가옥 조각루가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강 위에 놓여 진 작은 홍교에는 쉴 새 없이 사람들의 발길이 흐른다. 명나라 때 축조된 홍교는 청나라 강희 9년(1670년)에 보수한 뒤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명품 다리이다. 타강의 남북을 이어주는 홍교 위에는 전망대와 전시실, 상점 등이 있다. 또한 홍교 오른쪽에 위치한 수상가옥에는 이 도시가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 황융위(黃永玉)의 화실 ‘탈취루(奪翠樓)’가 있고, 또한 소설가 심종문의 생가도 있다. 150년 역사를 가진 심종문의 고택은 봉황고성의 전형적인 청나라 말기의 건축양식으로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일반인에게도 개방되는 그의 생가 내부에는 그와 관련된 책과 유물들이 깔끔하게 정리정돈 돼 있다.


“산이 아름답고, 물이 아름답고, 노래가 아름답고, 사람이 아름답다.”라는 그의 노래처럼 봉황이 뿜어내는 매력은 그리 화려하지 않지만 우아한 기품이 마을 곳곳에 스며 있다. 또한 근처에 성벽 길이가 190km에 이르는 남방장성이 있다. 남방장성은 약 400여 년 전 청나라에 복종하지 않는 토가족과 묘족을 격리시키기 위해 쌓은 성벽이라고 한다. 북방의 만리장성에 비해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높이 3m의 성벽과 전망대·초소·봉화대·종루 등이 있다. 가파른 성곽의 계단을 따라 산위로 올라가면 발아래로 고풍스런 봉황고성의 전경이 펼쳐진다.

 

봉황고성은 문명의 이기에서 잠시 몇 발짝 물러나 있어 옛스러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