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시안게임과 병역 혜택 그리고 선수 부상
인천아시안게임과 병역 혜택 그리고 선수 부상
축구 영웅 박지성에겐 특별한 별명이 붙었습니다. 바로 ‘산소통’(정확한 명칭은 공기통)입니다.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 시절 팀 동료들이 붙여준 ‘선물’입니다. 그라운드에 나서기 위해 운동화 끈을 조일 때 팀 동료들은 그를 보며 “산소통 썼어? 준비됐지?”라고 묻는다고 합니다. 그의 엄청난 폐활량과 놀라운 체력을 빗대 하는 말입니다.
축구대표팀 최주영 의무팀장은 박지성의 폐활량이 마라토너 못지 않아 일반인 아침 맥박수가 50인 데 비해 박지성은 40 정도로 숫자가 적을수록 적게 뛰면서도 산소 흡입량이 많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박지성은 빈번하게 부상에 시달렸지만 이를 악물고 다른 선수들보다 많이 뛰었습니다. 축구는 선수들이 자주 부딪히고 쉴새없이 달려 부상이 많은 종목입니다. 골절상이 많습니다.
이에 비해 야구는 축구보다는 덜 뛰고 경기 중에도 잠깐씩 쉴 수 있어 부상이 덜한 것 같지만 실제는 스포츠 종목 중 가장 많은 부상을 당하는 게 야구입니다. 사실 야구 선수들 대다수가 부상을 안고 시즌 내내 경기에 출장하고 있습니다.
팔꿈치에서 뼈조각이 돌아다니는 부상, 어깨 근육 파열과 염증, 허리 통증, 무릎인대 파열 등 통증, 허벅지 근육파열염증, 발바닥 염증, 손가락이나 발가락 손등 발등 골절, 발목 아킬레스건 파열, 얼굴 뼈 부상 등 스포츠 종목 중 가장 많은, 잦은 부상에 시달리고 부상을 달고 사는 게 야구선수들입니다.
달리면서 다른 선수와 충돌이 잦고, 배트로 때리거나 달릴 때 순간적으로 강한 집중력을 주어야 하고 평소 훈련량이 많으며, 몸을 움직일 때 정상적인 몸 놀림보다 손목과 팔, 허리, 무릎을 비트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투수들이나 강타자 중에서는 공을 던지거나 방망이를 때리는 순간 이를 악물어 치아가 부실해져 나이가 들어 고생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일반인들 중에서는 이런 사실을 몰라 엉뚱하게 고발한 사례가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발생했습니다.
지난 10월 4일 막을 내린 2014 인천아시안게임은 대회 조직위원회가 예산을 적게 들여 운영하고 준비 부족으로 인해 갖가지 문제점이 발생해 국내외에서 비난을 받았습니다. 어수선한 대회 운영이었지만 이번 대회에서 펜싱, 사격, 볼링, 우슈, 승마, 육상 필드에서 달리기, 남녀 배구, 남녀 농구, 남자 축구, 야구 등에서는 예상 이상의 성적이 나와 메달을 수확했고 북한 선수단이 참가해 대회 분위기를 고조시켰습니다.
그런데 야구가 인기를 모은 가운데 금메달을 따내자 선수들에 대한 병역 특례 혜택 논란이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이번 금메달로 야구대표팀에서 병역혜택을 받게 된 선수는 차우찬, 유원상, 이재학, 이태양, 한현희, 홍성무(이상 투수), 김민성, 오재원, 나지완, 황재균, 나성범, 손아섭, 김상수(이상 야수) 등 총 24명 중 13명입니다.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딴 운동선수에게 병역 면제 특혜를 주는 병역법 조항이 만들어진 것은 박정희 정부 시대인 지난 1973년입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따기 쉽지 않았던 때였던만큼 국위 선양을 한 선수에게 혜택을 주자는 취지였습니다. 이 조항이 시행된 지도 벌써 41년이 됐습니다.
이번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남자 선수 143명이 금메달을 땄고, 이 가운데 59명이 병역 면제를 받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축구 20명에 야구 13명까지 단체종목 선수들이 포함되면서 대상자가 크게 늘었습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는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만 받으면 병역을 면제받는 혜택을 누립니다. 스포츠 선수가 이런 특례를 받는 길은 딱 2가지입니다. 동하계 올림픽에서 동메달 이상을 획득하거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뿐입니다.
유독 논란이 된 것은 야구대표팀 선수들이었습니다. 한 수 또는 두 수 아래의 외국팀을 상대로 비교적 쉽게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병역을 합법적으로 면제받았다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이들중 상당수는 몇 억원의 고액 연봉을 받는 스타들인데 이런 선수들에게까지 병역 혜택을 주는 것은 과도한 특혜가 아니냐는 것이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심지어는 나지완(KIA) 선수가 대회 직후 금메달을 딴 소감에서 “팔에 뼛조각이 돌아다녀 통증이 심한 가운데도 금메달을 따 기쁘다”는 말을 하자 일부 네티즌은 “부상인데도 대표팀에 선발된 것은 문제다”면서 병역 혜택이 취소되어야 한다고 병무청에 고발하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병무청에서는 “정식 고발은 받지 못했고 고발이 있다 해도 그런 사항은 취소 대상이 아닐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국제대회를 통한 병역혜택은 국가가 한국 체육 발전 및 특기자 육성 교육을 위해 군 면제 혜택을 줍니다. 올림픽의 경우 색에 상관없이 메달만 따면, 아시안게임은 금메달을 딸 경우 병역혜택에 해당됩니다.
이에 더해 연금 혜택까지 주어집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올림픽 메달리스트에게 포인트제로 연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최대 월 100만원이고 더 많은 메달에 대해서는 포상금을 지급합니다.
이전부터 이 부문에서 논란이 일자 국회 국방위의 10월 10일 병무청 국정감사에서는 체육·예술인에 대한 병역 특례 제도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새누리당 송영근 의원은 “나지완 선수가 부상을 안고도 아시안 게임에 출전한 것을 뒤늦게 고백하면서 태극마크가 병역 면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았다”면서 “최상의 전력을 꾸리기보다는 구단별로 군 미필자를 뽑아서 선수단을 꾸려 ‘군 면제 메달’이라는 지적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진성준 의원도 자료를 내고 “세계선수권대회 등 권위 있는 대회를 인정하지 않고, 비인기종목과 인기종목 간 불균형으로 개선 요구가 지속적으로 나왔다”면서 “병역 면제를 받는 예술·체육 요원들의 재능기부(봉사활동)를 의무화하는 병역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앞으로 개선해야 할 것은 현재 병역 특례 제도가 안고 있는 모순점입니다. 현재 법 규정으로는 월드컵 축구에서 우승을 해도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농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농구선수권(농구 월드컵)에서 세계 최강인 미국 드림팀을 꺾고 정상에 올라도 병역에서는 아무 혜택이 없습니다.
병무청은 현 병역 특례 제도가 안고 있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9월 개선안을 마련했습니다만 해결 방안은 시원하게 나오지 않는 실정입니다. 현재 국가대표 선수와 지도자들은 새로 제시한 방안에 대해 대다수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어 공청회는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현재 스포츠 선수에 대한 병역 특례 제도는 대의명분과 일반인의 상식에서 동떨어져 있는 게 분명합니다.
아시안게임 종합순위가 국력의 바로미터라는 것도 냉전시대의 낡은 관념입니다. 현재의 풍토와 방식은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