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매거진/이태훈세계여행

「수레바퀴 밑에서」 만난 헤르만 헤세

제주한라병원 2014. 9. 30. 11:26

「수레바퀴 밑에서」 만난 헤르만 헤세
독일 칼브

 

 

헤세의 작품 ‘수레바퀴 밑에서’에서 등장하는 니콜라스 다리와 예배당

우리에게 데미안, 수레바퀴 밑에서, 유리알 유희 등으로 잘 알려진 헤르만 헤세는 예술가가 되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과 절규로 점철되었다. 마울브론 신학교의 학생, 페롯 공장의 잡부, 서점의 점원, 시인, 화가, 반전주의자 등 그의 이력만 봐도 헤세의 고난과 역경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수레바퀴 밑에서’라는 그의 작품에서 헤세는 자신에 대해 “14살 때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고, 15살 때 연애를 하고, 16살 때 술집에 드나들며 금기된 책을 읽고 대담한 글을 쓰다”라고 표현하였다. 이처럼 헤르만 헤세는 독일의 문호가 되기 위해 어릴 적부터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작은 유혹들과 처절하게 싸워야 했다.

헤르만 헤세는 1877년 7월 2일 서부 독일의 작은 도시 칼브(Calw)에서 태어나 1962년 스위스 몬테뇰라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자유로운 영혼을 갖고 살았다. 그는 유서 깊은 신학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끝내 신학자의 길을 저버리고 문학, 그림, 음악 등 예술에 열정을 몰입하며 살았다. 그의 아버지 요하네스는 신교의 목사였고, 어머니 또한 유서 깊은 신학자의 딸이었다. 특히 헤세의 외조부인 헤르만 군테르트는 우수한 신학자로 인도에서 수년 간 포교활동을 하였으며, 그의 성품과 종교적인 열정은 헤세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소박하고 아담한 칼브는 기차역조차

우리의 간이역에 해당할 만큼

작고 앙증맞다. 

기차역에서 내려다 본 칼브의 전경
 

니콜라스 다리에 오르면 헤세의 동상을

비롯해 그의 문학에 등장하는 감성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헤세는 칼브에서 3살 때까지 살다가 4살 때 부모님을 따라 스위스 바젤로 이주한 뒤 9살 때 다시 칼브로 돌아와 청소년 때까지 줄곧 고향에서 보냈다. 14살 때 헤세는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여 모범적인 학생으로 자랐으며 이듬해에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하여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선천적으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태어난 천재 문학가였다. 사춘기 시절 자신의 정체성에 고민을 하다가 신학교 기숙사를 번번이 탈출하여 1년도 못 되어 퇴학을 당하였다. 그 후 헤세는 서점의 견습원이 되었다가 다시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거기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1년 만에 퇴학을 당했다. 이처럼 그의 청소년 시절은 거칠었고 헤세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며 정신적으로 많은 아픔을 겪었다. 고등학교 퇴학을 당한 후 헤세는 병든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칼브의 시계공장에서 3년간 시계 톱니바퀴를 닦으면서 보냈다. 이때부터 헤세는 틈틈이 짬을 내어 문학에 열중하게 되어 훗날 독일 최고의 문학가로서 성장하는 초석을 마련하게 되었다. 22살 때 헤세는 스위스 바젤로 떠나 라이히서점에서 점원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문단에 등단하여 릴케에게 인정을 받기도 하였다. 그가 27살 되던 해 헤세는 최초의 장편소설《페터카멘친트 Peter Camenzind》를 발표하면서 명실공히 문학가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또한 그해 헤세는 9살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한 후 바젤에서 가이엔호펜으로 이주하여 본격적으로 문학에만 전념하였다. 한 평생 굴곡 같은 인생을 살아 온 헤세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문단과 출판계로부터 나치주의를 외면하다고 하여 비난과 공격을 당하기도 하였다. 광신적인 폭정과 인간성의 말살로 무장된 나치주의에 저항은 그의 문학 인생에서 아주 어려운 고난의 시간이었지만 그는 외세에 시달리지 않고 자유인으로서 문학과 그림에만 몰두하며 1962년 8월 9일 세상을 떠났다.

 

 

헤세 기념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전 세계에서 다양한 언어로 출간된 그의 서적을 만나게 된다. 


우리의 읍(邑) 정도에 해당되는 칼브는 느린 걸음으로 1시간 정도면 마을을 대충 둘러 볼 수 있을 만큼 아주 작은 시골이다. 하지만 헤세와 관련된 유적지와 그의 책을 읽으며 조용하게 산책을 하다보면 한나절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칼브는 ‘검은 숲’이라는 의미를 가진 도시로서 전나무 숲이 울창하다. 낯선 도시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칼브는 인적이 드물고 관광객도 아주 적은 전형적인 소도시이다. 하지만 산과 산 사이로 나골트 강이 유유히 흐르고, 산비탈을 따라 지어진 목조 가옥들이 서로 처마 끝을 맞대고 늘어선 골목길 등이 독일 특유의 풍경을 자랑한다. 우선 마을 입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나골트 강을 건너야 하는데 헤세가 살던 시절에는 다리가 하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4개 정도의 다리가 세워져 있다. 역 앞에 세워진 마르크트 다리는 최근의 것이고 헤세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니콜라우스 다리는 북서쪽으로 50여 미터 정도 올라가야 한다. ‘수레바퀴 밑에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니콜라우스 다리와 예배당에 이르면 헤세가 고뇌하고 방황할 때마다 친구가 되어 준 다리와 예배당이 남다르게 다가선다. 다리의 길이는 십 여 미터이고 너비도 그리 크지 않지만 한 천재 작가의 어릴 적 꿈과 낭만이 스며있어 헤세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이 다리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선다. 다리의 바닥을 박석으로 깔아 중세의 멋스러움이 느껴지고, 지금은 들어갈 수 없는 600년이 넘은 예배당은 다리 한 곳에서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 쓴 채 헤세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작은 다리 한 가운데 안경 쓰고 중절모를 손에 든 헤세의 동상이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대부분 관광객들은 헤세의 동상과 함께 멋진 사진 촬영을 하고, 다리 난간에 앉아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조용한 마을과 호흡하고 헤세와 만난다. 바람소리, 새소리 그리고 강물 소리 이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칼브의 아침은 너무나 고요하고 평온하다. 엷은 파스텔 톤의 수채화가 연상될 만큼 칼브의 아침 풍경은 도시의 번잡함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을 갖게 한다. 마치 헤세가 그린 수채화처럼 도시의 풍경은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고요함과 산뜻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헤세 팬들은 다리 난간이나 바닥에 앉아 그의 작품을 읽거나 예쁜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으로 그의 그리움을 달랜다. 이처럼 칼브는 헤세의 대한 향수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장소를 따라 여행하는 재미가 색다른 곳이다.

 

니콜라스 다리 난간에는 헤세의 삶의 흔적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