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멤논이 딸을 바쳐야 순풍분다”고 예언하는데…
역사 속 세상만사- 야만과 문명의 사이, 희생 제물 Ⅰ -
“아가멤논이 딸을 바쳐야 순풍분다”고 예언하는데…
지난 봄 대한민국 국민들을 슬픔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세월호의 상흔이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발생 배경, 참담하고 무력했던 구조 과정, 무고하게 희생된 300명의 안타까운 사연이 우리 가슴을 아직도 먹먹하게 한다.
이 참사가 보도되는 과정에서 상당수 언론들은 저널리즘의 기본을 벗어난 취재행태로 소위 ‘기레기’라는 불명예스런 신조어를 선사받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도 잠시 자기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갖는 듯 보였다. 하지만 유병언 씨의 시신이 발견된 전후 보여준 언론의 모습에서 조금 전 그들의 성찰과 반성의 노력과 결실은 찾기 힘들어졌다.
도대체 언론은 어떤 모습을 보여줬는가. 예를 들어 유벙언 씨가 입고 있던 팬티가 고가의 스위스 명품 브랜드였다든지, 몇 달동안 잠적했던 그의 장남 유대균 씨가 칩거중 뼈 없는 치킨을 배달시켜먹었는지 아닌지, 또는 박 모씨라는 여인과 내연관계였는지 아닌지 등….
유병언 씨나 그 가족들이 세월호 사건에 어떤 원인을 제공하였고 그 책임은 어떻게 져야 하는지에 대한 객관적이고 심층적인 보도를 제공해야 할 언론이 그것들과는 동떨어진, 하지만 당장 인터넷 클릭수나 조회수를 늘리기 편리한 것들에 한눈을 팔고 있는 것이다.
유병언 씨나 그 일가들의 책임이나 죄가 가볍다는 의미가 전혀 아님을 독자들께서는 잘 아실 것이다. 그들은 씻지 못할 큰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그들이 저지른 죄와 그 책임을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절차를 지켜 밝혀내고 징벌하는 과정 없이,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조차 빼앗는 것은 또 다른 야만(野蠻)의 이름에 다름 아니다. 만약 우리가 그들에게는 그런 인권조차 아깝다는 주장에 수긍해야 한다면 차라리 그들은 법정에서 기소되고 판결될 필요도 없이 이미 길거리에서 돌팔매질로 맞아 죽거나 총살되었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건의 본질을 한참 비켜간 이런 보도태도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보도경쟁으로 상업적 승리를 거두기 위해, 의제 설정(어젠다 세팅)이라는 언론의 중요한 기능을 망각하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오용해 본질을 벗어나 상업적으로 유용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할 희생 제물을 만들어가는 것은 혹 아닌가.
신화 속에서도 많은 희생용 제물이 등장한다. 에우리피데스가 쓴 두 희곡, <아울리스의 이피게니아>와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아>가 발표된 이래, 트로이 전쟁의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그의 불행한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 사이에서 태어난 큰 딸 이피게니아 이야기는 야만족들의 문화에 대한 그리스 문화의 우월성을 입증해주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스인들은 이피게니아 이야기를 통해 인간 희생제물 관례를 극복함으로써 자신들의 문명이 야만인들보다 우월하였음을 상징한다.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트로이로 진격하기 위해 모인 그리스군의 함대는 에우보이아 섬의 해안도시 아울리스에 속속 모여들었다. 호머에 따르면 약 1천 200척의 배가 모였다고 한다.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과 크레타의 왕 이도메네우스의 함대였다. 한 달 후 함대는 바다로 나아갔지만 이 출전은 실패였다. 신뢰할 만한 지도자가 없었던 탓에 이 함대는 엉뚱한 장소에 상륙했던 것이다. 그 지방의 주민들과 몇 번의 전투를 벌이고, 약탈을 한 것이 전부였다. 그들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와야만 했다.
아울리스에서 배를 수리하고 물품을 보급한 그들은 바람을 기다렸다. 그러나 전쟁의 승리를 위해 필수적인 순풍이 불지 않았다. 예언자인 칼카스는 아가멤논이 그의 딸 이피게니아를 아르테미스에게 희생 제물로 바쳐야만 순풍이 불 것이라고 예언했다. 아르테미스가 미케네의 왕에게 노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특히 그가 이 여신의 사슴을 죽인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가멤논은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가 결코 딸을 희생양으로 아울리스에 보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그리스군 지도자들은 계교를 써서라도 이피게니아를 그곳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아가멤논을 설득한다. 결국 오디세우스가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가서 “이피게니아가 위대한 영웅 아킬레우스와 결혼하게 되었다”고 둘러대었다. 그런 영예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왕비는 이피게니아와 함께 아울리스로 왔다. 한편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게 된 아가멤논은 곧 아내에게 편지로 진실을 전하려 하지만 그의 동생 메넬라오스가 편지를 가로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