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매거진/제주의이야기

생각하라, 그리하여 땅 위에 선 건축물에 말을 걸어보자

제주한라병원 2014. 7. 1. 11:15

제주건축 따라가기 <7> 철학을 말하는 건축

생각하라, 그리하여 땅 위에 선 건축물에 말을 걸어보자

이번엔 두 개의 건축물을 통해 건축이 말하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땅 위에 서 있는 건축물은 그 존엄한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래서인지 건축물은 스스로 말을 걸곤 한다. 건축물을 바라보는 이들을 향해, 건축물 속에서 살고 있는 이들을 향해 무언가를 묻고, 그에 대한 답을 한다. 그러나 그 답을 하도록 하게 만든 이는 있다. 건축물을 창조하는, 건축물의 입장에서는 ‘조물주’나 다름없는 ‘건축가’다. 그래서 영어에서는 ‘건축가(architect)’와 ‘조물주(the Architect)’의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가보다.

 

 

NXC센터 전경

NXC센터 뒷면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
2013년 제주건축문화대상 최고의 작품을 알지 모르겠다. 바로 NXC센터이다. NXC센터는 오피스 건물과 박물관이라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작품을 이른다. 설계는 제주에 있는 가우건축(대표 양건)이 맡았다. 육지부의 거대 건축사사무소와의 경쟁에서 따냈다고 한다. 양건 대표는 “호모 루덴스를 내건 게 효과를 본 듯하다”고 말한다.


현생인류는 익히 알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이다. 서서 행동하는 인간인 ‘호모 에렉투스’의 상위개념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인간이라는 개체가 생각을 통해 발전을 해왔고, 지금의 인류라는 거대한 존재를 일으켜 세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듯하다.


그런데 양건 대표가 말하는 ‘호모 루덴스’는 뭘까. ‘호모 루덴스’는 요한 호이징하가 출간한 「호모 루덴스」에서 따온 말이다. ‘호모 루덴스’는 놀이하는 인간을 지칭한다. 문화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은 노는데 무한한 시간을 보낸다. 잠을 자는 것만큼이나 노는데 집중을 한다. NXC센터는 바로 놀이를 만드는 회사이다. 그러기에 ‘호모 루덴스’라는 말은 참 적합해 보인다.


게다가 NXC센터의 별칭은 ‘호모 루덴스 실바’로 붙였다. ‘실바’는 고대 그리스의 ‘숲의 신’이다. 양건 대표는 이렇게 말을 한다.


“이 건축물의 애칭인 ‘호모 루덴스 실바’는 ‘놀이하는 인간 종족의 시원의 숲’이라는 뜻으로, 대지 주변의 소나무 숲과 건축과의 관계를 의미하죠. 또한 연구영역과 지원영역의 내부 프로그램을 형태적 요소로 활용하고, 주재료인 멀티코팅 유리는 주변 자연환경을 내부공간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투명성으로 자연과 일체화시키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놀까? 답은 ‘열심히 일해야 놀 수 있다’가 아닐까. 더욱이 게임을 만드는 업체라면 건축물도 최첨단이면서 노는 것 역시 최첨단이어야 한다. NXC센터의 오피스 건물은 최첨단을 강조하듯 하이테크한 면이 보인다. 어두운 밤에는 건물의 골격인 프레임을 드러내 ‘최첨단’과 ‘하이테크’를 강조한다. 특히 오피스 건물의 캔틸레버(한쪽 끝으로만 떠받쳐 공중으로 툭 튀어나온 들보)는 이 곳이 기술로도 ‘최고’라는 곳을 자부하기에 그만이다.


건물의 뒷면은 네모난 큐브의 집합체이다. ‘큐브 인 큐브(cube in cube)’, 즉 ‘상자 속의 상자’가 난무한다.


또다른 건물은 넥슨컴퓨터박물관이다. 여긴 바로 놀이를 본격적으로 즐기는 공간이다. 박물관이면서도 내부로 자연스레 들어오는 빛의 느낌이 좋은 곳이다.


‘호모 루덴스’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우린 얼마나 잘 놀고 있을까? 그렇다고 혼자만 잘 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최재천 교수가 말한 또다른 인간이 생각난다. ‘호모 심비우스’이다. 바로 공생하는 인간이다. 호모 에렉투스에서 호모 사피엔스로,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루덴스로. 다음은 호모 심비우스가 아닐까 한다. 숲에서 마음껏 뛰노는 인간(호모 루덴스 실바)은 언젠가 ‘호모 심비우스’가 될 것임을 NXC센터가 예고하고 있다면 너무 억측일까.

 

 

비우다 전경 

비우다 뒷면 


비움의 미학
‘청재설헌’(2000, 김재관·무회건축)이라는 펜션이 있다. 그 펜션의 모토는 ‘자연 그대로’이다. ‘자연 그대로’는 자연을 배우라는 게 아니라, 인간을 향해 자연이 되라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되냐고? 자신이 가진 걸 없애면 그만이다. 자신의 주변에 걸치고 다니는 휴대폰, 늘 집에서 리모콘을 만지작거리면서 쳐다보는 TV 등을 없애는 일이다. 그래서 청재설헌엔 TV가 아예 없다.


그런 곳이 청재설헌 말고도 또 있다. ‘제주스테이 비우다’(2013, 방철린·칸종합건축사사무소)이다. ‘비우다’는 없음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방철린은 대한민국의 대표 건축가 가운데 한 분이다. 그는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숱하게 받았다. 그는 노자의 도덕경에서 말하는 ‘무위자연’ 즉, 자연스러움의 이치를 건축에 접목시키는 작업을 해왔다고 한다. ‘비우다’ 역시 그 작업의 연속이다.


‘비우다’는 10개의 객실을 두고 있다. 각각의 객실은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얼굴이 다르듯, 매일 보는 자연이 다르듯, 이들 10개의 객실의 모양새나 의미 역시 다르다. ‘비우다’를 제대로 관찰하려면 10개의 객실을 모두 둘러봐야 가능한 일이다.

‘비우다’는 자연이다. 제주 역시 자연을 떼고서는 말을 할 수 없는 곳이다. 그런데 제주엔 그다지 자연스런 건물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비우다’는 어떻게 하면 자연에 가까울지를 고민하며 만들어졌다.


제주도의 자연은 꾸며지지 않을 때라야 빛을 발하듯, ‘비우다’도 꾸미는 걸 최대한 배제하려 했다. ‘무위’, 즉 ‘없음’을 노출콘크리트라는 재료로 형상화했다. 있는 그대로 만들어보겠다는 건축주와 건축가의 야심이 합쳐진 결과이다.


10개의 객실은 우리, 품은, 끝없이, 자유로운, 빛, 비인, 늘, 새로운 지금, 여기 등이다. 이들을 연결하니 문장이 만들어진다. “우리가 품은 끝없이 자유로운 빛, 늘 새로운 지금, 그리고 여기….” 참 그 문장에 비인이 빠졌다. 비인은 ‘비우다’를 닮은 말이다. ‘비~ㄴ’ 이렇게 읽으면 금상청화이다. ‘비인’은 또 ‘Be in’도 된다. ‘여기에 있는 존재’라는 뜻일테다.


‘비우다’는 비우는 것만 있는 건 아니다. 객실에서는 모든 걸 비우고 힐링하라고 하지만, 채우는 곳도 있다. 음식을 먹고, 서로간의 대화를 나누는 공간은 ‘채우다’라는 이름을 붙였다. 비우면 채우고, 다시 채워지면 비우는 게 우리의 인생이듯 ‘비우다’에 온 이들은 비우기도 하고 채우기도 하는 우리네 일상을 실천하라고 말을 건넨다.
‘비우다’는 3명의 여성이 이끌고 있다. 문화콘텐츠 기획을 해 온 권지민, 국제컨벤션에 일가견이 있는 권지은, 황혜성 선생으로부터 궁중음식을 사사받은 이기숙씨 등 이렇게 3명이다.


비우다의 대표를 맡고 있는 권지민씨는 이렇게 말한다.


“비워야 에너지가 채워지겠죠. 비워야 나만의 것이 나옵니다. 과잉에서는 나만의 것이 태어날 수 없어요. 여기에 온 사람들은 (‘비우다’라는) 작품 속에 들어가서 느끼기를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