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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염려증, 세월호 그리고 원전 재가동

제주한라병원 2014. 7. 1. 10:31

건강염려증, 세월호 그리고 원전 재가동
 
“건강하세요.” 제가 다치고 나서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 중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인사말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 누구나 하는 인사말이지만 뜻밖의 사고로 크게 다친 저에게는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병원을 유난히 자주 찾고 여러 가지 검사를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몸 여기저기가 아파 병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로부터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다른 병원을 찾습니다. 몸이 계속 아프고 큰 병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병원에서도 진단은 아무런 이상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건강염려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소한 신체적 증세 또는 감각을 심각하게 해석하여 스스로 심각한 병에 걸려 있다고 확신하거나 두려워하고, 여기에 몰두해 있는 상태가 건강염려증입니다.            


대체로 꼼꼼하고, 고집이 센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이 증세를 가진 사람들 대부분은 주위에서 질병을 가지고 있는 가족이나 친지, 의학 관련 책, 매체 등을 통해 의학지식을 얻으며 자신의 신체적 증세나 건강관련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식은땀, 체한 것 등 가벼운 증세를 너무 확대해석하여 악성종양, 심장병 등 심각한 질병에 걸린 것으로 생각하며, 이로 인해 불안해하거나 공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학적 지식으로, 검사결과 아무런 이상이 나타나지 않아도 오진이라고 여기거나 심각한 질병이어서 의사가 자신에게 사실을 숨긴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보통 이 증세로 인해 사회생활 또는 경제활동을 하는 데 지장이 있으며, 6개월 이상 지속될 때 건강염려증으로 진단합니다. 이 질병 환자들은 정신적인 요인에 의한 질병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치료하기가 쉽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정신요법 또는 약물요법 등을 시행해야 합니다.


‘건강염려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신체 이외에 다양한 대상에 관심과 초점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의사들은 조언합니다. 또한 지나칠 정도로 넘쳐나는 건강관련 정보에 대해 관심을 줄이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건강염려증’이 심각한 사람 중에는 자칫 약물과용에 빠질 수도 있어 문제입니다. 의사에게 “이런저런 일들로 불안해서 잠이 안 온다”고 말해 항불안제인 디아제팜과 수면유도제 등을 처방받아 갑니다. 정부 지정 마약류인 디아제팜을 구하는 일은 이처럼 쉽습니다.


우울증 등 정신건강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자발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추신경계를 자극해 단기적 각성 상태로 만들어주는 일부 향정신성의약품은 한때 ‘공부 잘하는 약’으로 불리며 수험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식욕억제 부작용이 있는 일부 약품은 ‘살 빼는 약’으로 둔갑해 암암리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미국과 인도 등지에서 향정신성의약품을 비타민제로 위장해 몰래 들여온 뒤 약물 중독자들에게 비싼 값에 팔아넘깁니다. 고객은 대부분 불면증이나 불안 증세 치료용으로 처음 향정신성의약품을 접했다가 서서히 중독자가 됐습니다.


지나친 ‘건강염려증’은 우리들의 몸을 도리어 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 운영되는 각종 시설과 도구, 사물의 관리는 철저히 체크하고 염려를 넘어 대비해야 합니다.


세월호가 바로 그렇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선박의 내구연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려준 덕분에, 노후선박의 수입이 급증하여 현재는 여객선의 선령이 평균 20.7년이라고 합니다. 세월호는 18년 된 배를 수입하여 올해 20세가 된 배입니다. 여기에다 세월호 선주는 돈을 벌기 위해 무리한 증축을 통해서 침몰을 자초했습니다. 이는 요즘 대부분의 배들이, 적어도 기계적으로는 세월호 같은 사고의 위험에 평균적으로 노출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세월호 선장과 많은 선원들은 자신들이 먼저 도피하면서 승객들을 외면하는 최악의 모습마저 보였습니다.


또 정부 당국은 선박회사로부터 돈을 받고 규정위반을 묵인했으며 해경은 제대로 대비훈련을 받지 못해 우왕좌왕하다가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주원인은 책임의식 부재와 각계의 부정부패입니다. 세월호 사고의 주원인은 과적으로 인한 복원력 부족, 평형수 운용 불량, 선박 운항자의 조선 미숙 등과 같은 내부적 요인을 비롯해 선원과 선박회사, 해양경찰 및 정부의 재난 대응체계 미흡 등 외부적 요인이 대형 참사를 일으켰습니다.      

        
한마디로 해운 선진국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후진국형 사고였습니다.  

          
현정부는 국가안전처 신설 등 성급하게 대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정부ㆍ국회ㆍ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범국가 차원의 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사고 원인과 대처과정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한 후 충분한 논의를 거쳐 종합적인 재난대응 대책안을 내놓는 것이 합리적인 대처방안입니다.


그래서 지난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던 바로 그 날,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고리 원전 1호기의 재가동을 승인했다는 사실은 유난히 불길하게 느껴집니다. 세월호 문제로 고리 원전 1호기 재가동이 승인됐다는 뉴스는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습니다. 그 원전은 예정된 수명이 다했지만, 10년을 연장하여 현재 36년째 가동 중인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원전입니다. 이미 120여 차례 고장 난 경력을 갖고 있으며, 이른바 ‘원전마피아’가 수많은 규격미달의 부품을 끼워 넣은 게 들통나 이미 몇 사람 구속된 사실도 있습니다.


부당한 수명연장에 의한 기계적 노화와 부패를 동반한 안일한 관리체제, 바로 이게 세월호를 바닷속에 가라앉게 만들었고, 구조작업마저 어렵게 만든 사건과 흡사합니다.
3년여 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수십만명의 피해자가 발생했습니다. 전쟁에 못지않은 대형참사입니다. 후쿠시마의 원전관리도 지진이 났을 경우에 어떤 재앙이 생길 지를 몇몇 관리책임자들이 쉬쉬하는 바람에 커진 사고입니다. 우려와 비판의 소리를 감추려다 일어난 참사입니다.


한국은 원전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는 강변이 아직 지배적이지만 20년이 지나 10년을 늘리며 재가동하겠다는 이번 고리 원전 1호기는 사고나기 십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