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가 흐르며 젊음과 낭만이 있는 동화의 도시
時가 흐르며 젊음과 낭만이 있는 동화의 도시
영국 옥스퍼드
▲ 중세의 고풍스러움과 학생의 활력이 언제나 넘쳐나는 옥스퍼드
마네의 ‘풀밭위에 점심’이라는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지는 옥스퍼드는 학문, 예술, 지성, 젊음 등이 도시 전체를 감싼다. 무엇보다 옥스퍼드는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 ‘루이스 캐럴’이 평생 동안 이곳에서 보냈기에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주인공처럼 이 도시를 여행하게 된다. 100년이라는 한 세기가 흘렀지만 캐럴이 배웠고 가르쳤던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는 세월의 무상함을 이겨내고 오늘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간의 때가 묻은 학교 담벼락과 파릇한 담장에도 그가 고민하고 즐거웠던 일들이 아로새겨져 있다. 캐럴이 크라이스트처치의 학생이었을 때나 교수가 되었을 때도 담쟁이 넝쿨은 언제나 그의 친구가 되어 주었고, 옥스퍼드 시내 한 가운데 자리한 카팍스 타워나 보들리안 도서관 등도 오늘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다. 담쟁이 잎이 건물 외벽 전체를 덮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크라이스트처치에는 루이스 캐럴과 관련한 아련한 추억들이 살아 숨쉰다. 그러기에 옥스퍼드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이자 세계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대학도시이다.
▲파릇한 잔디에 앉아 따스한 햇살을 쬐며 아름다운 봄을 만끽하고 있는 학생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블렌함임 궁전은 영국의 수상을 지낸 처칠의 생가이다. ▲봄이면 영원히 파란 하늘아래 한 폭의 수채화가 그려지는 옥스퍼드 전경
그의 카메라 속에 담긴 19세기 옥스퍼드는 지금도 빅토리아 시대 때의 고색창연함이 묻어나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이상한 나라에 온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좁은 거리와 골목길에 들어서면 중세시대 건물에서 이 도시가 얼마나 고풍스럽고 우아한 지를 잘 설명해 준다. 각기 다른 모습의 칼리지 안뜰에는 작은 분수와 파릇파릇한 잔디가 오후의 풍요로움을 만끽하고 있다. 또한 오랜 세월에 의해 닳아 문드러진 포석과 회랑에서는 옥스퍼드 특유의 유구한 역사와 삶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이처럼 옥스퍼드는 900여개에 이르는 중세의 건물마다 독특한 역사와 전통이 스며있어 여행자들에게 아름다운 옥스퍼드의 이미지를 안겨준다. 잔디와 작은 광장마다 삼삼오오 짝을 이룬 대학생들이 삶의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좁은 골목길을 걷다보면 마치 캐럴 교수나 엘리스 자매를 만날 듯한 묘한 기분에 휩싸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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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리포터의 배경지로 유명한 크라이스트처치의 그레이트 홀. |
▲학생들의 삶의 여유를 제공하는 맥주 펍. |
▲루이스 캐럴 교수의 삶의 열정이 스민 크라이스트처치. |
옥스퍼드에서 가장 젊은이들이 북적거리는 ‘카팍스(Carfax)' 타워에 이르면 그야말로 ’젊음과 낭만‘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만큼 상큼한 이미지가 곳곳에 스며있다. 자전거로 도시를 누비는 많은 학생들의 모습과 선생님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건물투어에 나선 어린 학생들, 그리고 어리둥절하게 여기저기 둘러보느라 정신없는 여행자들까지 도시의 풍경은 너무나 따스한 꿈과 희망이 곳곳에 배어있다. 아마 캐럴교수가 대학을 다녔을 시기에도 이런 모습이 그려졌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학교 분위기와 사뭇 다르고, 좀 더 여유와 낭만이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네온사인과 유흥주점이 넘쳐나고, 서점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우리의 대학교 풍경과는 달리 지나치는 학생과 시민들 사이에서 삶의 풍요로움이 느껴졌다. 내가 성인이 돼서 다시 옥스퍼드를 찾았을 때도 대학생 때 느꼈던 분위기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학창시절의 배낭여행을 추억 삼아 조금 더 시내 중심가로 발길을 옮겼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옥스퍼드 역사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카팍스이다. 네거리 중심에 서 있는 카팍스는 이 도시의 랜드 마크이자 교회 부속물 중 하나다. 과거 이 교회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대자의 세례식이 거행됐으며, 옥스퍼드의 ‘타운 앤 가운’ 분쟁 때 분노한 시민들이 탑 꼭대기에 올라가 학생들에게 돌을 던졌던 장소이기도 하다. 카팍스 타워 맞은편에 있는 성 메리 교회의 좁고 비탈진 계단을 따라 오르면 발아래로 옥스퍼드의 비경이 스펙트럼처럼 펼쳐진다. 뾰족한 건물 밑으로 짙은 녹색의 잔디 광장이 제일 먼저 눈 속을 파고들고, 천 년 동안 도시를 터줏대감처럼 지켜온 크고 작은 칼리지 건물들이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늠름하게 버티고 있다. 건물 귀퉁이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젊은 남녀가 아름다운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은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옥스퍼드는 영국의 변화무쌍한 날씨와는 달리 아주 상쾌하고 고급스런 분위기의 이미지를 빚어낸다. 달콤한 아이스크림 하나들고 편안한 마음으로 발길 닿는 데로 이리저리 다니다보면 옥스퍼드가 가진 매력이 소리 없이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한 편의 시가 흐르는 옥스퍼드는 영국을 대표하는 고도이자 젊음과 낭만이 쉴 새 없이 흐르는 동화의 도시이다. 세월에 때가 묻지 않은 건물이 없지만 이 도시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단연 크라이스트처치이다. 새파란 담장이 잎으로 덮여진 이 건물은 사진 찍는 것을 취미로 삼았던 캐럴 교수가 죽을 때까지 자신의 모든 열정을 받친 곳이다.
◀ 옥스퍼드에서 가장 젊은이들이 북적거리는 ‘카팍스(Carfax)’ 타워
1525년에 지어진 크라이스트처치는 옥스퍼드에 있는 단과대학 중에 가장 오래된 곳이자 청년 루이스 캐럴이 수학을 전공하고, 교수로 학생을 가르쳤던 곳이다. 학교 내부에는 캐럴 교수가 초기에 제작된 다게레오타입의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촬영했던 예배당, 분수, 강당, 톰 타워 등이 들어서 있다. 무엇보다 이 학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크라이스트처치를 빛낸 교수들의 초상화가 걸린 그레이트 홀이다. 1529년에 건축된 그레이트 홀은 학생과 교수들이 식사를 하는 구내식당이다. 현재에도 크라이스트처치 교수와 학생들이 점심 식사를 이곳에서 하며, 점심시간 이후에만 일반인들에게 공개한다. 50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그레이트 홀은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식당의 배경지로 유명하다. 오렌지 빛의 전등이 우아함과 역사성을 보여주는 홀 안으로 들어서면 루이스 캐럴 교수의 초상화와 그의 작품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등장인물에 나오는 ‘엘리스의 창’이 스테인드글라스에 그려져 있다. 상큼한 빛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해 수많은 사람들의 초상화가 걸린 벽면에 닿는 순간 우리 눈에 익숙한 캐럴 교수의 초상화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실, 캐럴 교수의 초상화를 찾기는 그리 쉽지 않다. 홀 안에는 너무나 많은 초상화가 걸려있고, 입구 왼쪽 벽면 아래에 캐럴교수의 초상화가 있기 때문에 등을 돌려야 찾을 수 있다. 특히 루이스 캐럴 초상화 밑에는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Charles Lutwidge Dodgson)’이 쓰여 있기에 그의 본명을 모른다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의자에 앉아 그윽한 눈빛으로 사색을 즐기고 있는 캐럴 교수의 눈을 보면 그가 남기고 간 아름다운 동화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나간다. 마치 동화에서 나올 법만 모든 것이 펼쳐지는 곳이 바로 옥스퍼드이다.
▲ 성 메리 교회 종탑에서 바라다 본 옥스퍼드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