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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해’에 떠올리는 신화속 기묘한 주인공

제주한라병원 2014. 2. 27. 10:26

역사 속 세상만사- 반인반마(伴人伴馬), 켄타우로스 -
‘말의 해’에 떠올리는 신화속 기묘한 주인공

 

올해는 갑오(甲午)년이라서 청마(靑馬)의 해라고 한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로 이뤄진 십간(十干) 중 갑(甲)이 푸름을 뜻하고,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로 이뤄진 십이지 중 오(午)는 말을 뜻하니 푸른 말의 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봉 정도전,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이 말띠이고, 외국으로 보면 아이작 뉴턴, 쇼팽, 넬슨 만델라 등이 말띠 해에 태어난 인물들이다.


그렇다면 그리스 신화에서는 말과 관련된 캐릭터는 없을까? 있다. 머리부터 허리까지는 사람이지만, 허리 아래로는 말인 반인반마(伴人伴馬) 켄타우로스가 바로 그들인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가장 기묘한 종족이다. 이번 호에서는 켄타우로스 이야기를 살펴보자.


고대인들은 말을 몹시 좋아했기 때문에, 말의 성질과 인간의 성질이 합쳐져도 이걸 퇴화한 것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래서 켄타우로스는 고대인들이 상상한 괴물 가운데서도그나마 긍정적인 특성을 부여받은 유일한 괴물이었다.


고전시대의 조각가들이 켄타우로스족이 그리스의 라피테스인과 싸우는 모습을 신전의 장식물로 생생하게 조각해 놓아서, 이 종족이 실제로 존재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리스인들이 거인족인 기간테스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신들을 즐겨 묘사했던 것은 그것이 야만족에 대한 그들의 우월성을 입증해 주는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켄타우로스족에 대한 라피테스인의 승리도 그리스인들에게는 마찬가지의 의미였을 것이다.


익시온과 헤라의 환영(幻影)인 구름 사이에서 태어난 켄타우로스와, 테살리아의 산간 지방을 휘젓고 다니던 사나운 암말 사이에서 켄타우로스족은 생겨났다. 테살리아는 그리스 북쪽에 위치한 땅으로 그리스인들과 거친 야만족 사이의 국경 지역이었다. 때문에 그리스의 라피테스인과 켄타우로스족  모두 이 지역에 대한 권리를 다투었다.

수차례의 격전을 치르고 나서야 이들은 싸움을 그만두기로 합의했다. 라피테스인의 왕 페이리토스는 화해의 의미로 아름다운 공주 히포다메이아와의 결혼식에 켄타우로스족을 초대했다. 켄타우로스족도 전혀 악의없이 결혼식에 참석했지만 포도주를 무절제하게 마신 나머지 그들은 너무 취해버리고 말았다. 신부인 히포다메이아가 이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려고 나타나자 켄타우로스 족장 에우리티온은 그녀를 등에 태워 납치해 버렸다. 그러자 다른 켄타우로스들도 그들의 족장처럼 여자들과 아름다운 소년들에게 달려들었다.


라피테스인들은 즉시 무기를 들었고 둘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다. 페이리토스는 히포다메이아를 구해내고, 에우리티온을 붙잡아 그의 코와 귀를 베어버렸다. 라피테스인과 켄타우로스족 사이에는 다시 오랜 전쟁이 벌어졌다. 그 결과 켄타우로스족은 테살리아 지방에서 완전히 쫓겨나고 말았다. 페이리토스가 에우리티온을 제압하고 신부 히포다메이아를 구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인 테세우스의 도움이 컸다고 전해진다.


테세우스 외에도 켄타우로스족과 싸움을 벌인 그리스의 유명한 영웅으로 헤라클레스가 있다. 켄타우로스족은 테살리아에서 밀려난 후 아르카디아 지방에 살았는데, 그곳에서 헤라클레스와 마주치게 된다. 그때 헤라클레스는 폴로스라고 하는 친절하고 문명화된 켄타우로스의 손님으로 그곳에 가 있었다. 그곳에는 켄타우로스들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현명한 케이론도 함께 있었다. (그는 영웅 아킬레우스, 그리고 아르고 원정대의 총사령관 이아손의 스승이었다. 또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도 케이론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었다.)


이들의 만찬장이 피비린내 나는 싸움터로 변해버리게 된 것도 포도주 때문이었다. 주변에 살던 켄타우로스들이 포도주 냄새를 맡고 이곳으로 몰려와 손님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그가 오래전에 죽였던 뱀 히드라의 피를 묻힌 독화살을 쏘아 자신을 방어했는데 불행하게도 폴로스와 케이론도 이 독화살에 맞고 말았다. 폴로스는 다른 켄타우로스들처럼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 그러나 케이론은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죽을 수조차 없었다. 그는 신들의 후손이라서 불사의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친절한 티탄 프로메테우스가 그에게서 불사의 능력을 거두어들여 마침내 그를 고통에서 구원할 수 있었다.


지난 호에서 다루었던 것처럼 헤라클레스를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네소스도 켄타우로스였다. 페이리토스, 테세우스, 헤라클레스 등과 같은 영웅들이 켄타우로스족을 무찌르는 이야기는 야만족들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승리를 상징하겠지만, 헤라클레스의 최후에 관한 이야기에서 보듯 거기엔 이 패배자들의 복수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