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이야기 - 토트의 서(書) ⑥
공포에 질린 세트나는 비명 지르며 정신을 잃고…
아름다운 자태의 미녀 타부바에 홀딱 반한 세트나는 “아내와 이혼하고 자식들을 죽여 바스트 신전의 고양이에게 던져줘야 당신의 사랑을 받아줄 수 있다”는 타부바의 황당한 요구에 “당신 말대로 하겠소”하고 답해버리고 만다. 조강지처 버리면 벌받는 법. 세트나가 즉석에서 아내를 거리로 쫓아내고 자식들을 바스트 신의 신성한 고양이들 먹이로 삼겠노라는 서약서를 쓰고 나서야 타부바는 그에게 한 잔의 포도주를 다시 권한 후 신부의 노래를 불렀다.
잠시 후 소름끼치는 비명들이 그녀의 집 높은 창을 넘어 들려왔다. 세트나를 부르는 자식들의 비명소리였다. 세트나는 황금 잔에 담긴 포도주를 마시며 타부바에게 말했다. “나의 아내는 거지가 되었고, 나의 자식들은 죽었소.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오직 당신 하나 밖에 없소. 자 이제 나에게 오시오, 내 사랑!”
타부바는 하토르 신보다 사랑스러운 자태로 세트나를 두 팔로 껴안으며 키스를 퍼부었다. 황홀경에 빠진 세트나 역시 그녀를 힘차게 껴안았다. 그런데 그 순간 세트나가 껴안은 그녀의 모습은 천천히 변하더니 무시무시한 말라비틀어진 해골이 되어버렸다. 공포에 질린 세트나가 비명을 지르자 칠흑같은 어둠이 깔리며 한치 앞을 분간하기 어렵게 되었고 그는 정신을 잃고 만다.
한참 후 정신을 차려 보니 세트나는 부바스티스에서 멤피스로 가는 도로 옆 사막에 벌거벗은 채 누워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벌거벗은 그를 비웃고 조롱했다. 그 가운데 한 친절한 사람이 그에게 망토를 던져 주어서 겨우 망토로 몸을 가리고 거지처럼 멤피스로 돌아왔다. 궁에 돌아오니 죽은 줄 알았던 아내와 자식들이 살아 있었다. 그제서야 세트나는 어서 빨리 토트 신의 책을 네페르카프타에게 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속에서 타부바와 그녀의 마법이 내게 경고한 것이구나. 내가 실제로 그런 마법에 걸린다면 정말 끔찍할 것이다.”
세트나는 토트 신의 책을 손에 들고 다시 네페르카프타의 무덤으로 찾아갔다. 그 앞에서 주문을 외우니 문이 열렸고, 그는 네페르카프타와 그의 아내, 그리고 아들이 있는 무덤의 현실(玄室)로 걸어들어갔다.
“위대한 프타가 너를 구해주었구나. 네가 이곳에 돌아오게 한 프타 신에게 감사하거라.” 네페르카프타가 세트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 책을 원래 자리에 놓아두거라. 하지만 나의 복수가 완전히 끝났다고는 생각하지 말아라.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대로 행하지 않으면 너의 꿈은 언제든지 현실이 될 것이다.”
세트나는 몸을 낮추고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마법의 달인, 네페르카프타여. 당신의 정당한 복수를 피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말해 주십시오. 그것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면 뭐든지 시키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너도 알다시피 나의 시신은 이곳 멤피스에 있지만, 아내와 아들의 시신은 콥토스에 안장되어 있다. 아내와 아들의 시신을 여기로 옮겨다오. 오시리스가 지상에 돌아오는 부활의 날까지 함께 지낼 수 있게 말이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 아끼고 사랑하여 떨어져 지낼 수가 없구나.”
왕자는 서둘러 파라오 람세스에게 달려가 파라오의 범선을 빌려 타고 나일강을 따라 콥토스로 항해를 시작했다. 콥토스에 도착한 그는 곧 이시스와 호루스에게 제물을 바치고 신전의 제사장들에게 아흐웨레와 메랍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다. 그들은 신전에 보관된 문서를 뒤져 위치를 찾으려 했으나 아무런 기록도 찾을 수 없었다. 세트나는 몹시 실망하였지만 단념하지 않고 무덤의 위치를 알려주는 사람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고 공고했다.
그러자 한 노인이 비틀거리며 신전에 다가오더니, “당신이 위대한 서기 세트나 왕자님이신가요? 그러면 나를 따라오시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나의 증조할아버지는 그 무덤을 파는 공사를 했었다고 말씀해주셨소.”
노인은 세트나를 콥토스의 변두리에 있는 한 집으로 안내했다. “이 집을 허물고 그 밑을 파 보시오.” 세트나는 그 집에 살고 있던 사람에게 많은 돈을 주고 집을 산 후 인부를 시켜 발굴 작업을 했다. 얼마쯤 파 내려갔을 때 과연 무덤이 하나 나왔다. 그리고 무덤 안에는 아흐웨레와 메랍의 미라가 안치되어 있었다. 그때 먼 곳에 서있던 노인이 손을 흔들며 그에게 뭐라고 소리를 질렀고 몸을 돌려 보자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노인은 무덤의 위치를 알려주러 온 네페르카프타의 카(영혼)였던 것이다.
아흐웨레와 메랍의 미라를 찾은 세트나 왕자는 예를 다해 파라오의 범선에 싣고 멤피스로 돌아왔다. 파라오 람세스 2세는 그들의 미라를 안치하는 장례식을 직접 주관하여 네페르카프타의 미라 옆에 안치했다. 얼마 후 그들의 무덤 위로는 거대한 모래폭풍이 지나갔고, 어디에 무덤이 있었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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