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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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들이 있어 든든했다1

제주한라병원 2011. 5. 30. 16:09

2008/01
우리는 그들이 있어 든든했다1

김영진 사무차장

 

 

“아직도 거기 다니냐”로 시작된 80년대.

“너네 조금 좋아졌더라”로 변화된 90년대.

“부탁 좀 하자”로 진행되고 있는 2000년대.

 

제주한라병원과 역사를 같이하는 김영진 사무차장이 80년대부터 현재까지 지인이나 친척들에게서 듣던 소리다. 짤막한 말이나 필자는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그 속에 응축된 의미가 짐짓 우리네 인생사와 닮았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이 꿈꾸는 일터는 당장은 힘들더라도 힘든 일들을 헤쳐나가다 보면 어디에선가 점차 희망이 보이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자신의 젊은 생을 보람차게 보내고 싶어한다.

 

삶을 살면서, 직장을 다니면서 우리네 인생사가 바라는 게 폭풍우 같은 20대가 지나서, 파도 치는 30대, 잔물결 이는 40대를 지나 고요한 호수 같은 50대를 맞이하는 것이라고 필자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바다. 그런 희망아래 직장을 다니는 것이라고.

 

그런데 제주한라병원이 바로 그런 과정을 거쳤으니…85년도에 경리과에 입사해 경리과장, 총무과장, 총무부장, 원무부장을 두루 거치고 올해 사무차장으로 승진, 이제 50대를 맞이한 김 사무차장은 어떤 마음인지 궁금했다.

 

“저는 그 폭풍우를 20대 후반에 맞이했는데 나쁘지 않았어요. 남들은 그렇게 힘들게 왜 회사를 다니느냐고 했지만 저는 회사가 가장 힘들었을 때 일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병원을 다녔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김사무처장과 같은 생각을 가진 직원이 있기에 제주한라병원이 그간의 역경을 견뎌냈구나하고 어렴풋이 이해될 듯 했다.

 

“힘들 때 힘들다고 도망가기 보다 그 힘든 일은 저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부딪혔어요. 무엇보다 회사가 힘들 때 경리과에 있었으니 도망갈래야 갈수도 없었고 피해서도 안됐어요”

 

당시 김 사무차장이 가장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말이 있단다.

 

“해결됐습니다”

 

아마 모든 경영자들이 평생 듣고싶은 말이겠지만. 돌아온 어음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 힘들고 기나긴 하루를 보내고 은행 일을 마무리한 후   모두들 편안히 귀가할 수 있게 하는 그 한마디 보고를 하고 나면 힘든었던 하루를 보상받은 느낌이었다.

 

“제주한라병원이 83년도에 개원했는데 개원초기에는 병원 인근에 건물이라고 해봐야 제주일보사, 저 멀리 도청이 보일 정도로 건물이 없고 대부분 밭이었죠. 제주일보사 옆에 오일장이 섰으니…신제주 개발 초기였어요. 버스 노선도 없고,,, 지금이야 교통체증으로 고생하지만 당시에는 버스도 잘 안다녔어요. 그래서 구 제주 남문파출소 앞에 병원셔틀버스를 운영할 정도였어요”

 

잠시 김 사무차장이 당시를 회상하듯 80년대와 90년대를 넘나들며 인근 풍경을 그려준다.

 

“저는 50대를 성실하게 일하는 것은 당연하고 병원 관련된 사항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해결사역할을 하는 거대한 호수로 보내려고 합니다”